그렇게 길게 기차를 탄 것은 오래간만이다. 자다가 깼다가 그렇게 졸다가 정신이 들어서 창밖을 보니 달이 떠 있다. 자작나무 숲이 지나가고 달이 나뭇가지에 숨었다가 떠오른다. 뜻하지 않은 풍경에 창가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댄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어요.
어제 저녁 주방에서 ㅅㅇ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문득 생각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한 달 넘게 여행을 다닐 만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고 툴툴거리던 남편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거기다가 1년에 한 달은 여행을 갈 것이라는 목표는 세웠지만 절박한 것도 아니고 그게 굳이 동유럽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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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체코에 왔을까.
데친 역에서 오후 1시 25분 R685 편을 타고 엘베강을 끼고 두 시간쯤 달려 프라하 중앙역으로, 오후 3시 24분 EC281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향하면서도 그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막연하게 동경했던 동유럽이다. 특히 부다페스트는 로망으로 현실로 이루어지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
애초 식당칸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를 부리면서 마음껏 풍경을 만끽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자꾸만 우울해졌다.
고질병이 도진 것일까. 일행들과 잘 놀다가도 가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만사 귀찮아하는 삐딱선. 또 왜? 통로를 오가면서 사람들에게 메뉴판을 보여주며 주문을 받는 빨간색 앞치마를 두른 반백의 남자에게 눈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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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석이 식당칸인가. 직원이 음식을 자리까지 갖다 주는 게 색다른 느낌이다. 반백 남자의 양팔에 한 문신과 수염과 안경을 낀 얼굴에서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요리사일까. 어느 나라에서 거주할까. 반백 남자의 여정을 그려보지만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앞자리에 앉은 외국인 남자는 노트북 하다가 누군가 통화 하다가 맥주 2병과 소시지 요리를 먹는다. 이참에 나는 미리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맥주와 차와 커피를 꺼내 먹고 마시고는 한숨 눈을 붙인다는 게 내내 꿀잠을 잤다.
자작나무 숲에 숨었다가 나타나는 달은 졸졸 기차를 따라온다. 달빛이 떠다니는 자작나무 숲은 고요하고 적적하다. 너무 고요해서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들이닥친,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직전의 정적처럼 불안하다.
꿈에 그리던 부다페스트를 가는구나.
그나저나 부다페스트는 왜 로망이 되었을까.
오래 전, 서울 모임에서 광안리 해변이 부다페스트를 떠올리게 한다는 모 작가의 말 때문인가. 아니면 ...
숨바꼭질하는 달을 보면서 숨바꼭질하는 생각을 이어간다.
긴 시간, 기차여행은 내게 현실을 보여준다. 일상을 벗어나니 일상이 보인다고나 할까. 현실 속에 갇혀서 살던 나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고나 할까. 체코에 온 이유가, 부다페스트로 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었나. 뭔가 두루뭉술했던 생각이 확연히 눈에 잡히고 그간의 일들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따지고 보면 좋고 나쁜 일들이 모두 나 자신이 선택해서 만든 결과였다. 물론 주어진 상황에 따른 선택이고 깊이 생각해서 선택했든 감정적으로 했든 어쨌든 그 모든 것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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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는 것이다. 이 말은 (...)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말이다”
임레 케르케스 ‘운명’이란 책 구절을 중얼거린다.
1944년 6월 30일 열네 살의 나이에 7000여 명의 다른 유대인과 함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 케르케스, 이후 독일 부헨발트 수용소와 차이츠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케르케스에게 주어진 상황은 최악이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어떻게 하루하루 살았을까. 그의 소설 ‘운명’에서 보면 주인공 죄르지는 강제수용소에 받은 인상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거기서 일어난 상황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에게 닥친 일상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집으로 온 그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그 모든 사건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그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한몫을 했다는 걸 직감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다가온 운명은 어느 날 불쑥 그냥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다가오는데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 이전의 사람들이 동참해서 일어난 것이다.
약 8시간, 돌진하는 기차길 따라 지나간 일들이 우후죽순 돋아났다가 사라진다. 10대, 청소년기, 20대, 30대…. 선명한 색채로 희미한 실루엣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장면들….
내가 체코에 온 것은 바로 이것이었나.
#(…) 나는 어쨌든 얼마 후에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것들이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사실을 납득해야만 했다. 그런 일들은 (…) 근본적으로는 다른 어떤 특이한 일들보다 더 별난 일들은 아니었다. (…) 정작 나를 괴롭히고 나의 확신을 어떤 식으로든 무너뜨린 진짜 장본인은, 결국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우연히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나, 이 사실을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출처] 운명 (소설, 임레 케르케스)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보면 정말 기뻐하실 것이다. 불쌍한 어머니, 내 기억에 어머니는 내가 엔지니어나 의사 아니면 그와 비슷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나는 틀림없이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극복하지 못할 불가능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출처] 운명 (소설, 임레 케르테스)
#임레 케르케스:1922년 11월 9일에 부다페스트에서 목재상을 하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2016년 3월 31일에 향년 86세의 나이로 부다페스트에서 사망.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