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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유럽 인문학여행4] 여행에서의 새로운 만남 -데친 주방에서 꽃피운 대화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4.09.13 07:08 수정 2024.09.13 07:08

김서련 소설가

ⓒ 웅상뉴스(웅상신문)
여행에서 또 다른 재미 하나는 새로운 만남이다. 몇십 년 다른 공간에서 살다가 만난 사람들, 살아온 것도 생각하는 것도 추구하는 것도 다르지만 30일 동안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지내야 한다. 글을 쓰는 나로선 신선한 경험이다. 상대의 취향이 어떻든 성격이 어떻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 세상에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수년 전, 한참 소협 산행을 다닐 때 송도에서 자갈치 시장까지 걸어왔고 우리는 배가 묶여 있는 선착장에서 술판을 벌인 적이 있었다. 불빛이 바다에서 넘실거리고 그 너머 영도가 보이는 그런 분위기에서 모 선생이 말했다.

그렇지. 작가에겐 그 모든 경험이 소설의 소재가 되니 버릴 게 하나도 없지.

우린 공감대를 형성하며 술을 마셨다. 두 번의 장기 여행 끝에 얻은 결론은 어떤 사람이든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체코 여행에서도 그 점을 인지하고 사람들을 대했다. 사실, 여행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새로 만난 사람이나 상황이나 사물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나름대로 세계를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살고 있었다. 어떤 때는 각자 자신이 만든 우주에서 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걔는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얼굴이 변해요. 분갈이해서 이름이 적힌 팻말이라도 없어지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기도 해요.

여행 4일이 되던 날, 데친 K하우스 주방에서 처음으로 옆방 ㅅㅇ와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다육 100종류를 키운다면서 다육식물에 대해 말한다.
 
순전히 나의 호기심이 만든 자리였다. 저녁 8시 40분쯤 단톡방에 올라온 그녀와 몇몇 술자리 사진을 보고 커피도 내릴 겸 슬렁슬렁 주방에 내려간 나는 맥주와 치즈를 안주로 한담을 나누는 자리에 슬그머니 합류했다. 며칠 함께 돌아다녀서 어느 정도 익숙해서 거리낌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 면면을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여행지에서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술 한잔하자면서 자리를 내어주는 그들이나 마다하지 않는 나나 낯선 여행지에서 서로 알고 싶다는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성에 따라 다육이 변하는 거죠?

나는 ㅅㅇ의 얼굴을 보면서 호기심을 드러냈다. 정성에 따라 꽃의 모양이 변한다는 게 신기했다. 그녀는 하루하루 다육의 변하는 과정을 개인 밴드에 올린다면서
네. 햇빛에 따라 색도 변하고 모양도 변해요. 다육 그 자체가 얼굴이라 꽃도 적당히 피면 잘라주어야 해요.

ㅅㅇ의 말에는 다육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그냥 내버려 둬도 잘 잘 자랄 것 같은 다육에 그렇게 손이 많이 가다니.
100종류나 어떻게 키워요?
나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나로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여태 화초에 물 준 기억이 없다. 그래도 집안에 화초가 푸른 기운을 내뿜는 것은 남편 덕분이다.
 

요즘 많이 줄어든 거예요. 이전엔 300종류 키웠어요.
그녀가 발그스레하게 얼굴을 붉힌다. 아, 그래서 얼굴이 저렇게 밝고 늘 웃음이 사라지지 않구나. 여행 참가할 때 바로 내 위에 등록한 그녀와는 방도 똑같고 계단참 욕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그녀였다. 게다가 마주칠 때마다 무슨 얘기를 할 때마다 활짝 미소를 지어서 마음이 편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다육에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작아서 집에서 키우기 쉽고 매일 새로운 다육을 개발하다 보니 모양이 비슷해지고 색이 너무나 이쁜 것도 많다나.

여행의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데친 주방에서 꽃피운 화제는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는 정성에 따라 다육의 형태가 변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육을 키우는 그녀의 세계를 아주 조금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사람의 얼굴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생각했고 나에 대해서 깊게 생각했다. 나는 얼마만큼 가족에게, 내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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