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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유럽 인문학여행3] 폴란드 글리비체-오르세-나이세 선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4.09.12 06:02 수정 2024.09.13 06:02

김서련 소설가


ⓒ 웅상뉴스(웅상신문)
ⓒ 웅상뉴스(웅상신문)
꽤 고급스러운 커피숍이예요.
여행가이드 30년 경력의 강 선생이 말한다. 시청이 있고 천 년 이상 된 건물이 있는 광장의 커피숍에 들어온 것은 어제 마신 와인 때문이다. 달달하고 맛있다면서 마신 와인은 며칠 동안 강행군한 몸에 스며들어 결국은 일을 만들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점심은 수프와 아이스크림으로 해결하고 어딜 커피숍에서 커피나 마셔야겠다고 하니 강 선생이 안내해준다면서 나섰다. 

글리비체라는 이름은 1276년 문헌에 최초로 등장했고 중세 초기 폴란드 공국이었으나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약 600년 만에 폴란드 영토로 귀속되었다는 강 선생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풍스러운 건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창밖 풍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를 차지한 우리는 손을 들어서 주문한다. 강 선생은 이쁜 하트가 들어간 카페라테, 나는 아메리카노 빅사이즈를 주문한다. 남자 직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면서 커피를 갖다 준다.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외국인들로 가득 찬 커피숍에는 도란도란 말소리가 떠다닌다. 스페인에서 관광 공부를 하다가 주로 유럽 쪽으로 가이드를 한 강 선생은 여행지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몇 가지 이야기하고 나는 흥미 있게 듣는다. 달달한 와인 덕분에 강 선생과 커피도 마시고 여행 정보도 듣다니.

데친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오이빈 성을 둘러보고 탁 트인 유리문으로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공간 활용을 잘한 건축물을 보면서 달려온 폴란드 글리비체. 리무진에서 내려 걸어오다가 만난 강 이름이 무엇인가. 나이스 강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았지만 긴가민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다. 글리비체 나이스 강이 뜨지 않고 대신 오데르강이 나온다. 

폴란드 말로는 오드라강, 폴란드와 체코, 독일 국경을 흐르는 강으로 글리비체 운하, 오데르 슈프레 운하를 통해 엘베강, 바르타강, 비스와강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내륙 수상 교통의 동맥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엘베강 단어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체코 데친에서 오며 가며 보는 강이 아닌가.

오데르-나이세 선
마침내 나이스 비슷한 나이세강 이름을 나온다. 600년 동안 여러 나라에 귀속되었던 폴란드도 우리나라처럼 소련과 영미에 의해 국경이 정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스탈린과 처칠, 루스벨트는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선을 두고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벌인다. 포츠담에서 스탈린은 폴란드 정부가 오데르-나이세선을 원했고, 이 선 동쪽의 독일인을 모두 떠났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후 러시아인들은 여전히 이 지역에 수백만 명의 독일인(실제로 더 많았음)이 남아 있음을 인정했다. 일부 폴란드 공산당 지도자들은 회담에서 오데르-서부 나이세 국경선을 주장한다. 슈체친항은 중앙유럽 수출에 필요하였다. 만약 슈체친이 폴란드령이었다면 "수원지는 오데르강과 나이세강의 가운데쯤에 있다. 

만약 오데르강의 지류가 다른 나라의 통제를 받으면 강이 막힐 수 있다"라고 밝혔다.

소련군은 슈체친을 장악하려고 했던 폴란드 관리들을 5월과 6월에 추방하였고, 1945년 7월 5일까지 소련에서 감시받는 독일 공산당이 지정한 시장을 임명한다.

암튼 미국, 영국, 소련이 참가한 포츠담 회담에서 평화 조약을 체결하면서, 오데르-나이세선 동쪽의 독일 영토를 폴란드에 할양하고, 신규 및 기존 폴란드 영토에 있는 독일인을 추방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1990년 독일-폴란드 국경 조약은 오데르-나이세선을 독일-폴란드 국경으로 확정한다.

강의 풍경은 음울한 분위기이고 거리는 고풍스럽다. 커피숍을 나와 거리를 둘러본다. 강 선생은 가게 앞 테이블에서 정답게 빵을 먹는 노부부 모습을 보고 저런 풍경이 너무 좋아서 가이드를 했다면서 감회에 젖은 얼굴이 된다.

우리는 중세기 교회와 건물을 보고 강을 따라서 일행과 접선 장소로 향한다. 폴란드 글리비체가 겪어야했던 일들이 주루룩 펼쳐진다.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가 겪었던 상황들이 지나간다. 우리의 삶을 결정한 사건들, 나의 삶을 결정한 사건들이 우후죽순 솟아났다가 사라진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우울한 풍경 때문인가. 기분이 자꾸만 가라앉고 쓸쓸해진다. 뭐 어때. 한껏 우울해지자. 여태 그런 일이 한두 번 있었나. 살다 보면,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고요한 평화가 찾아들고 잔잔한 기쁨이 만들어지고 사는 것이 즐거워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1시간 30분 전과 달리 도시 풍경이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카페와 이쁜 집과 푸른 하늘과 강이 있는 포르투갈의 포르투 강변을 떠올리면서 본 비교하면서 우울한 강변이 정답게 느껴진다. 진회색 구름과 집들이 나름대로 운치가 있네.

#폴란드 출신 다미안 하이니슈 사진작가
‘45’ 제목의 사진집을 낸 다미안의 할아버지는 제 제2차 세계대전 무렵 45세 나이에 폴란드 글리비체에서 우크라이나 드발체프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세상을 떠났고 다미안의 아버지는 정치,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45세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폴란드를 떠나 서독에 정착했다. 

어느 날 다미안은 할아버지가 수용소로 끌려가던 절망적인 순간에 남긴 일기장을 건네받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동했던 길을 따라 비슷한 루트의 기차 여정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45’였다. 2013년 7개월 동안 총 4번 기차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은 4324장, 처음엔 개인적인 관점으로 접근했지만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유럽 내의 강제 추방, 이주, 재정착의 과정 등 유럽 역사 전반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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