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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산책

길을 떠나다9 / 겨울 온천여행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1.12.20 08:18 수정 2022.01.02 08:18

강명숙 시인

강명숙 시인 사진제공
COVID-19가 지상에 만연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요원한 걸까. COVID-19로 대중탕 이용이 쉽지 않은 요즘이다. 안전이 보장되는 지인 몇이 마음을 같이해 매주 목요일을 목욕 가는 날로 잡아 창녕 부곡의 가족탕을 빌려 몇 개월 동안 목욕을 다녔다. 

그러다 점점 COVID-19확산세가 심해지고 COVID-19 백신 주사의 후유증세로 그마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후로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대중탕에 대한 두려움이 더해 집에서 하는 샤워하는 정도가 다였다. 

온천욕을 좋아하던 지인들이라 `언제 긴장감 없이 온천욕 한 번 하겠느냐`는 타령을 하다 `단계적 일상 회복` 발표가 있자마자 온천욕 채비를 갖춰 경북 울진 백암온천으로 향했다.

강명숙 시인 사진제공
백암으로 가는 길은 청정 동해안과 나란히 난 7번 국도를 타고 간다. 7번 국도 가까이에 포항에서 삼척까지 철마가 달리게 될 동해선 공사가 한창이다. 포항에서 영덕 1단계 구간은 이미 개통되어 열차가 운행하고 있다. 부산에서 바다를 보며 동해선을 타고 강원도 삼척까지 가게 될 날이 그다지 멀지 않은 것이다. 2022년 완공 예정이라고 하니 생각만으로 가슴이 설렌다.

포항과 영덕군의 경계 지경(地境)에 위치한 화진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모래밭을 가진 화진해수욕장은 동해안에 올 때마다 찾는 곳이다. 모래톱에 서서 발을 적시거나 부드러운 모래밭을 걷노라면 시간을 어느새 청춘의 때로 돌아가 있다. 가까이에는 12폭포로 유명한 내연산과 그 산이 품은 사찰 보경사와 연산 온천 파크가 있어 사철 찾아드는 이들이 많은 곳이다.

화진해수욕장을 지나고 나면 영덕 장사해수욕장이다.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가 오랫동안 그 진실이 기밀에 붙여져 침묵하고 있다가 영화 `문산호` 상영으로 이름 없이 스러져간 `학도병`들이 재조명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기만전술로 장사상륙작전이 있었다.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학도병 700여 명은 겨우 총 몇 번 쏘아보고는 문산호를 타고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되어 장사 바다에서 인민군의 총알 앞에 백수십 명이 희생된다. 군번도 없는 학도병의 희생으로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영덕 강구의 지인을 통해 들은 지가 30여 년이 되었다. 그 후로 주변인들에게 장사상륙작전에 대해 들려주었지만, 대개가 긴가민가하였다. 지금은 장사바닷가에 그 당시 투입된 `문산호`는 복원되어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 되어있다. 꽃다운 나이에 희생되어 역사 속에 잊혔던 영웅들의 흔적을 보며 숭고한 희생 앞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다시 울진 백암온천을 향해 가는 길 대(竹)개로 유명한 강구를 지나 평해, 이제 백암온천지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여름날 평해에서 백암온천으로 가는 길은 배롱나무 붉은 자미꽃이 피어 호화로운데 겨울엔 반들거리는 배롱나무의 빈 몸만 보고 간다. 숙박지인 H 콘도에 여장을 풀고 온천탕으로 직행이다.

강명숙 시인 사진제공
 우리나라 최고의 알카리온천 대온천탕이 COVID-19의 영향으로 오롯이 우리 차지다. 오랜만의 온천욕에 세상이 내 것인 양하다. 가뿐한 몸으로 편안한 잠자리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난 이른 아침, 동쪽을 향한 큰 창으로 떠오르는 해맞이를 한다. 아직 고요에 싸인 마을과 산 겹겹이 안개가 스며들어 몽환적인 풍경이다. 어떤 감탄사가 필요하랴. 그 첩첩 속으로 빨려드니 무릉도원인 듯하다.

서거정이 읊은 백암온천에 대한 칠언절구(七言絶句) 시조 [井沐湯] 를 옮겨 본다.

六鼇屭奰山高掀 (여섯 자라 크게 힘써 산을 드높이 치켜들고)
九龍護井通靈源 (아홉 용이 우물 보호해 신령한 근원 통하네)
湯泉溢溢盎似春 (끓인 물 넘실넘실 봄기운 같이 넘쳐흐르고)
鬼神呵衛無埃氛 (귀신이 세차게 호위하니 더러운 기운 없네)
聞說一勺沈痾痊 (전하는 말 들으니 한 잔의 물 고질병 고치고)
輸以兩腋骨亦仙 (두 겨드랑이 담그면 몸이 또 신선이 된다네)
我今詩酒成膏肓 (내가 지금 시와 술로 고질병을 이루었으니)
欲往快雪仍痛湔 (가서 쾌히 씻어 괴로움을 털어내고자 하네)

* 서거정 1420(세종 2)∼1488(성종 19) 조선 전기의 문신
강명숙 시인
양산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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