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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데스크에서

시와 주민이 함께 문화재를 살리고 보존해야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1.11.14 08:21 수정 2021.11.14 08:21

편집장 최 철 근

ⓒ 웅상뉴스(웅상신문)
웅상의 문화재를 크게 꼽자면 미타암과 우불산성이 있다.
미타암(彌陀庵)은 우리나라 삼보사찰인 양산 통도사의 말사이다. 천성산에서 내원사와 반대편 웅상 쪽에 있다. 이를 가려면 차를 산 중턱 주차장에 세워 두고 가파른 계단을 30여 분 걸어올라가야 한다. 노인들은 아예 엄두도 못 낼 정도이다. 그래서 이번에 양산시와 문화재청에서 임도를 내기를 결정했다.

웅상지역에서 최고의 사찰인 미타암은 주변 사람은 물론 부산이나 근교 지역에서도 많이 오는 사찰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신라 초기 원효(元曉)가 창건했다. 1376년(우왕 2) 중창한 오랜 역사를 지닌 미타암은 웅상지역 천년 고찰로서 통일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보물 제998호 석조아미타여래입상(石造阿彌陀如來立像)이 깎아지른 천연동굴에 있는 전통사찰로, 멀리 울산 앞바다와 웅상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어 전국에서 많은 신도와 탐방객이 찾는 지역 명소다. 웅상에서 최고 가치 있는 문화재다.
한때 웅상지역이 인구가 얼마 되지 않아 농사가 주업이었을 당시 미타암에서 하루에 두 번 울리는 타종 소리를 듣고 시간을 짐작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했다. 그러면서 불심으로 애환을 달래고 의지를 하게 됐다. 당연 웅상 사람들은 미타암을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살아왔다.

지난 7일 미타암이 사찰경내까지 차로 도착할 수 있는 임도개설의 원만한 진행을 위한 행사가 있었다. 도로가 개설되면 신도와 등산객, 관광객의 통행이 크게 편리해질 예정이다. 특히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은 그동안 통행이 힘들었으나 새 도로가 개설되면 불편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도로가 개설되더라도 임도의 특성을 고려해 장애인과 노인, 신도 등을 태운 차량 통행만 허용하고 일반인 차량 이용은 통제할 방침이지만 사찰을 오가는 공공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오갈 수 있다. 다음 달 중 착공해 내년 상반기 준공할 예정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어 웅상의 최고 문화재를 살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웅상에는 우불산성이 있다. 삼호동에 있는 우불산성(牛佛山城)은 산세를 따라서 산에 쌓은 성으로 적으로 하여금 많은 힘을 기울여 공격하게 하고, 아군이 적을 내려다보며 방어하려는 의도에서 축조된 것의 총칭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잘 발달되어 있고, 고개나 고갯마루에 쌓은 것을 포함하여 불리며, 그 기원은 선사시대의 남부 시베리아나 만주지방의 도피용 성책과 아주 완벽히 닮았고 삼국시대에 이르러서 산성이 많이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시대 포곡식 산성인 우불산성의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산성 내부에서 채집되는 토기편과 서남쪽의 주남리 고부군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신라 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구축방법은 협축식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일시 주둔했고 주민들이 삼호리성을 쌓아 왜군과 항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내의 지형은 정상 부위가 평탄한 반월 형상의 대지상이고, 외곽은 급경사를 이루며 남동장벽의 중간에는 얕은 곡부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 성벽은 많이 파손되어 있지만, 곳곳에 흔적들이 남아 있고, 세 곳의 고지(高地)에 장대(將臺), 암문(暗門), 통로 등의 시설이 있고, 창고와 연못의 위치도 확인이 가능하다. 내력이나 문화적 영역으로 보아 지리적으로는 울산권에 속하는 우불산성은 울산이나 경주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으로, 군사적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다. 특히 이곳은 신라의 24개의 주요 제장(祭場)이었던 소사(小祀)와 관련된 곳이라 그 의미가 깊다.

한때 우불산성 복원사업은 웅상발전협의회에서 최대 현안으로 추진했던 사업으로 지역의 최고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십수년간 애를 쓴 적이 있었다. 이는 웅상사람들이 1800여 년의 역사의 유산이자 문화재이며 웅상지역의 맥과 역사가 묻혀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문화재를 잘 보존하면 우리에게도 재산이 될 수 있다. 문화재는 과거의 우리의 선조들의 생활, 사상 등이 담긴 것이다. 그래서 문화재를 통해 조상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으며 우리 후손들에게도 이런 문화재를 물려주어야 조상들의 창의성을 본받고 문화재를 보고서 조상들이 있었던 그 당시의 상황들을 짐작할 수 있다. 문화재는 지역 사회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양산시와 웅상 지역민들이 모두 합심해서 함께 웅상의 문화재를 살리고 보존해 나아가야 한다는 주민들의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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