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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는 부산이 가진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우리나라 동쪽 지역에서 거제도를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거가대교가 있고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다는 해저 48M의 침매터널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가덕 신공항 건설이야기로 많이 알려져 아마 전국이 가덕도를 거의 알고 있을 것이다.
가덕도는 육지와 이어지기 전의 섬이었을 때 진해 용원에서 배를 이용해 몇 번 찾았던 곳이었다. 가덕도의 연대봉 산행도 몇 번을 했지만, 가덕도 한 쪽 귀퉁이 ‘외양포’란 마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 외양포를 알게 된 건 우연히 여느 섬들과 전혀 다른 섬마을 풍경 사진을 보게 되면서였다.
그 후 며칠 지나 외양포를 가기 위해 가덕도를 찾았다.
골리앗 크레인이 도열한 신항만의 위용을 보며 들어선 가덕도는 거가대교 건설과 연결도로 공사로 곳곳이 파헤쳐 져 뻘건 생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선창에서 천성을 지나 외양포 마을이 있는 대항으로 넘어가는 길은 경사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끼며 산길을 넘어 외양포 마을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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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내려서면서 만난 외양포 마을 풍경은 필자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 속의 마을이었다. 외양포는 일제 강점기 때 진해만 요새 사령부가 들어서면서 마을 전체를 병영으로 만들었다 한다. 그때 일본군 막사로 썼던 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지금 마을을 이루고 있어 다른 어촌 풍경과는 사뭇 달라 생경한 모습이었다.
마을 일방통행 길 안내를 하는 마을 어른께 포대 진지 위치를 물어 마을 위쪽에 자리한 포진지 터를 찾았다. 입구 건립비 한 면에는 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란 글이, 또 다른 한 면에는 ‘소화 11년 6월 건지(昭和十一年六月建之)’ 라고 새겨져 있다.
소화 11년이면 1936년이 된다. 해방까지는 아직 10여 년이란 긴 세월이 남았을 때다. 외양포 포대진지는 일본이 진해만으로 들어오는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1904년 8월에 착공하여 그해 12월에 준공한 것이라고 한다. 포진지 옆에는 두께가 1m 됨직한 벽을 가진 화약고가 있고, 진지 위는 대나무 숲을 조성해 항공기로도 식별이 어렵도록 위장을 해두었다.
일본군이 포대진지와 주둔을 위한 사령부 막사 그리고 우물, 수로 등을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짓고 만들었다 생각하니 나라 뺏긴 민족의 설움과 아픔이 분노가 되어 끓었다. 길 안내를 해주시던 어른의 이야기를 빌면 외양포 마을에서 대항 세바지 등대로 가는 길에 화장터도 있었다 한다.
“우리 아버지 말에 그놈들 많이 때렸다고 했지. 이래도 패고 저래도 패고 그러다 죽으면 저 꼭대기로 끌고 가 태우고...” 짐승같이 부리다가 쓰러져 죽으면 그 주검마저도 아무렇게나 대했다니 일본의 만행에 치가 떨렸다. 길 안내를 해주셨던 어른도 이제 이 땅을 떠나고 일본의 만행을 누군가의 육성 증언으로 듣기는 어려워졌지만, 그 후로도 몇 번 외양포를 찾았다. 이제는 세바지 등대로 가는 포장도로가 새로 생겼고 외양포 마을을 가는 길도 수월해졌다.
최근에 다시 외양포를 찾은 날은 오월의 햇살과 바람이 싱그러운 날이었다. 포진지에서 올려다 본 대항 세바지 등대 능선은 초록으로 풍성하다. 외양포에는 마을 역사와 함께한 107세의 할머니 한 분이 아직 생존해 계신다.
그 어른마저 떠나고 나면 일제 찬탈의 역사는 텍스트로만 남을 것이다. 외양포를 찾는다면 일본색이 그대로 남은 마을과 일본군의 포대진지 그 잔재 앞에서 한 세기가 가도록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어쩌다 혹시라도 찬사 말아야 할 것이다. 치욕의 역사를 목숨과 바꾸며 처절하게 살다간 우리 조상, 조선인의 넋이 시간 멈춘 이 공간에 아직 떠돌고 있을지 모를 일이기에.
외양포는 놀이 삼아 가는 곳이 아니다. 일본이 자국의 목적을 위해 도구로 썼던 우리 땅, 우리 조상의 수난사를 만나러 가는 곳이다. 독도를 다케시마로 동해를 일본해로 명명하고 자국의 것이라 주장하며 아직도 멈추지 않는 일본의 침략 행위에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숙제를 안고 되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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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올라 이 땅을 굽어보니/ 큰 봉우리와 작은 뫼뿌리의 어여쁨이여,/ 아지랑이 속으로 시선이 녹아다는 곳까지/ 오똑 오똑 솟았다가는 굽이쳐 달리는 그 산줄기,/ 네 품에 안겨 뒹굴고 싶도록 아름답구나./... 중략 ...//
에워싼 것이 바다로되 물결이 성내지 않고/ 샘가 시내로 가늘게 수놓았건만/ 그 물이 맑고 그 바다 푸르러서,/한 모금 마시면 한 백 년이나 수(壽)를 할 듯/ 퐁퐁퐁 솟아서는 넘쳐넘쳐 흐르는구나.// 할아버지 주무시는 저 산기슭에/ 할미꽃이 졸고 뻐꾹새는 울어 예네./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도 돌아만 가면/ 저 언덕 위에 편안히 묻어드리고/ 그 발치에 나도 누워 깊은 설움 잊으오리다...중략... [나의 강산이여] 부문 - 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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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 시인
양산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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