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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진주검무의 맥을 이은 양산의 무용수”

김경희 기자 입력 2021.05.12 22:00 수정 2021.05.12 22:00

이정희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호 ‘진주검무’ 이수자
진주 낙향한 고종의 궁중 무희 고 최순이가 권번에 전수
진주검무 부산지부가 창립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워

↑↑ 이정희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이수자
ⓒ 웅상뉴스(웅상신문)
서창의 한 커피숍에서 이정희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이수자를 만났다.

진주검무를 추는 무용수!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여서 은근히 기대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냥 딱 ‘칼춤’ 추는 무용수다.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진주 남강에서 자유자재로 칼자루를 움직이는 춤꾼의 기개가 느껴졌다.
 
진주검무는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 춤 7종목 중 제일 먼저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고 궁중에서 연희하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궁중무용 중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여성 검무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춤이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무용은 언제부터 접하게 되었는가?”


아주 어릴 때부터 멋모르고 시작했다. 어머니가 무용에 관심이 많아서 유치원 대신 리틀엔젤스무용단 유치부을 다녔고 자연스럽게 무용을 접했다. 이후 부산으로 이사를 오며 중학교 시절 다시 무용을 시작했다. 진주검무는 진주 국립 경상대 무용학과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접했다. 그때는 학생이라 귀한 춤인지 모르고 가볍게 하다가 진주검무 부산지부가 창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진주검무를 배웠다.

“진주군무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진주검무는 신라 화랑 관창의 칼춤으로부터 유래되어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춤이다. 전쟁과 승리를 상징하는 검무는 조선 중,후기에 궁중으로 유입되어 여기무로 변화되면서 궁중과 지방 관아에 예속되었던 관기에 의해 연희됐다.

진주에서는 의기 논개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의병들을 위한 제향은 물론, 여러 애국 행사에는 예로부터 진주검무를 현무로 올려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고종의 궁중 무희로 있었던 진주교방출신 고 최순이가 진주로 낙향하여 진주 권번에 검무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진주검무의 특징은 전복을 입고 양편으로 맞서 추며 숙인사위, 입춤사위, 앉은사위, 방석돌이, 연풍대 등 독특한 춤사위가 있고 한삼을 끼고 춤을 추다가 한삼을 빼고 맨손으로 다양한 무대를 보인다.

또한 형식, 가락, 칼 쓰는 법 등이 옛 궁중의 그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다른 검무와 달리 8명으로 연희가 되며, 도드리 장단으로 시작하여 타령곡 및 타령곡의 속도로 변화시킨 여러 곡이 사용된다. 특히 다른 검무에는 없는 독특한 춤사위가 많다. 현재 예능 보유자로는 유영희, 김태연 등이 있다.

악기는 북, 장고, 대금, 해금 및 피리 한 쌍으로 구성된다. 진주검무는 한삼을 끼고 무릎을 굽혀 도는 숙인사위, 앉아서 추는 앉은사위, 허리를 앞으로 엎쳤다가 뒤로 제끼며 빙빙 도는 연풍대가락, 맨손으로 팔을 펴는 손 사위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젊은 무용수가 꽤 많다. 어떻게 활동하는가?”


양산에서만 무대 공연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무용수들이 인근 다른 지역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다. 진주검무는 국가 춤이라 진주, 부산, 전라도, 거제, 남해 등 전국적으로 공연을 하러 다녔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방법이 없어서 손 놓고 있었는데, 올해는 온라인 공연이 활성화되어 이런 것을 통해서 공연을 자주 보여준다. 작년보다 많이 낫다.

“무용수로서의 어려운 점이 있다면”

끝이 없는 공부라서 어렵다. 항상 공부해야 하고 해도 알지 못한다. 몸이 재산이다. 몸 관리를 해야 한다. 젊었을 때는 생계 연계가 안 되니까 이것 말고 딴 걸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무용을 해야 하는 일이 반드시 생겼다. 그럴 때가 상당히 많아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진주검무의 매력은 무엇인가?”

진주검무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다. 정말 줄도 동작도 딱딱 맞아야 한다. 서로 배려하는 맘이 없으면 이 춤은 출 수가 없다. 칼 쓰는 손의 위치와 숙이는 몸의 각도, 땅에 발을 짚고 떼는 속도, 간격 그런 것들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으면 줄이 어긋나거나 한다. 서로서로 긴장하고 맞춰야 한다. 그런 것들이 매력적이다.

처음에는 혼자 추다가 결론적으로 나혼자 되는 춤이 아니구나 알게 된다. 그것은 한 번만 검무를 해도 알 수가 있다. 진주검무 보유자 선생님이 항상 오랫동안 깊이 추지 않으면 절대 출 수 없는 춤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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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진주검무의 전망은?”

진주검무가 지금 주목받는 이유는 변형되지 않고 내려오는 춤의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가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예전에 비해 요즘은 많은 젊은 무용인들이 진주검무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전승을 계승하는데 발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시대는 많이 변화된 춤을 춰야 주목받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서로 협업해야 더 화려하고 멋진 창작품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기반에는 변하지 않는 뿌리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런 기반 아래 변화를 주어야 깊은 춤이 나오지 않을까. 전통문화를 활성화하고 후배들이 가깝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게[ 기성 무용수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정희 무용수는 소주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일반인에게 1주일에 2번 한국무용을 강습할 예정이다.
진주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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