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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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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십여 년 전 첫 산행을 시작으로 몇 해 전까지 많은 산들을 올랐었다. 이제는 산을 오르기보다 둘레길 걷기가 알맞은 나이인 탓에 산행은 거의 쉬고 있다. 하지만 멀리서 마치 춤을 추듯 너울진 산 능선을 보면 젊은 날 그때처럼 마냥 가슴이 설렌다.
그리고 마음 저 홀로 오래전 걸었던 산길을 찾아 걷는다. 그 시간 속에서 만났던 신비로운 자태의 바위며 나무, 꽃과 새들의 노래 숲의 향기를 기억하며 행복감에 빠진다. 연두가 서서히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요즈음이 산과 벗하기 참 좋은 때이다. 싱그러운 연초록과 맑은 나무 향기는 숲에 든 자만이 누리는 호사인 것이다. 한발 한발 오르느라 촉촉이 땀 밴 목덜미를 산바람 한줄기가 씻으며 지나는 순간, 그 상큼함은 짜릿하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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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지나 4월에 들어서면 진달래 핀 산을 찾아 산행을 즐겼다. 남쪽에서는 진달래 산행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 전남 여수의 영취산과 가까이 대구 비슬산, 거제의 대금산 그리고 창원의 천주산이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수집어 수집어서/ 다 못 타는 연분홍이/ 부끄러워 부끄러워/ 바위 틈에 숨어 피다/ 그나마 남이 볼세라/ 고대 지고 말더라 – 노산 이은상 시조`진달래1` 전문 –. 이곳의 진달래는 노산이 노래한 수줍은 진달래가 아니다. 온통 불바다가 되는 산들이다. 아마 김소월이 노래한 영변 약산의 진달래가 이러했을지 모를 일이다.
진달래를 만나러 창원 천주산을 오르기로 마음을 정하고서 먼저 간 보기를 했다. 간 보기는 진달래 개화가 얼마 정도인지를 미리 알아보고 만개의 때를 맞추기 위한 것이다.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고 나서 주말이면 천주산 날머리에서 하산하는 산객들에게 진달래 개화 상태를 묻는다.
반 정도 피었다기에 며칠을 기다려 산행을 했다. 산행일 북창원 나들목을 나와 눈을 들어 본 산은 꽃물이 들어 빨갛다. 가슴은 쿵쾅대고 발걸음은 빨라진다. 달천 계곡 길을 걸어 오른 천주산 정상은 알싸한 꽃향기와 온통 붉은 물결의 꽃 바다다.
그 바다에 몸을 던져 꽃물 들고 싶어 꽃무리 속에 묻힌다. 어떤 감탄의 표현도 어떤 수식의 말도 그곳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어떤 이가 진달래 불바다를 마주하고 서서 `미쳤다!` 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곳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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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진달래는 국민 애창곡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선생의 진달래이기도 하다. `아기 진달래` 가 바로 천주산 진달래인 것이다. 이제는 내년을 기약하며 떠난 자리에 연분홍 연달래가 희뜩희뜩 피어 아쉬움을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진달래는 두견새의 슬픔이 배어 두견화로도 불리는 아련한 꽃, 가곡이나 대중가요 속에서도 아픔이 전해지는 아릿한 꽃이 진달래다. 그러나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 산비탈을 흘러내리는 천주산의 꽃물결을 보고 있으면 아련하고 아릿함은 먼 거리의 말이 된다. 술 한 모금 없이도 붉게 취해 하산하며 내년에도 진달래 꽃 바다에 흠씬 젖는 행운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익어서 붉어지는 것은 진리다/ 봄꽃 피어 흐드러지고/ 이순의 나이도/ 새삼 어지러이/ 춘정으로 타올라라// 손마디 굵은 아낙이 빚은/ 곡주 한 잔/ 낮술로 걸쳐/ 아 -/ 이 몸도 전설 안고 누워/ 골짝마다 타오르는/ 두견화 마냥/ 새빨간 피나 토할까나(졸시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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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 시인
양산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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