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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산책

문화산책 / 봄에 빠지다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1.04.07 08:27 수정 2021.04.07 08:27

강명숙 시인

ⓒ 웅상뉴스(웅상신문)

계절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겨우내 봄을 기다린 꽃들이 한꺼번에 화르르 피어나고 있다. 대지와 가까운 것들 움터 꽃 피고 나면, 뿌리로부터 물관을 타고 오른 봄이 나뭇가지에 올라 먼저 매화를 피우고 숭얼숭얼 벚꽃도 피우고 살구꽃, 복사꽃을 호명하여 차례로 줄을 세우더니 어찌 된 영문인지 몇 해 전부터는 꽃이 피는 순서가 흐트러진듯하다. 너도나도 마구 피어나니 봄꽃하고 눈 맞추기도 바쁘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 깽깽이 풀

지금부터 십여 년도 훨씬 지났을 때다. 그 당시에는 멸종 위기 식물 2급 보호종이던 깽깽이 풀 서식지가 울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다. 고속도로 공사로 훼손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기사였다. 신문에 실린 공사현장 사진을 참고해 그곳을 찾았다. 산속 비탈을 헤매다 한 포기 깽깽이 풀꽃을 만난 곳은 고속도로 공사 절개지 아득해 보이는 절벽이었다. 아찔한 첫 만남이었다. 돌아 내려오는 산길 곳곳에 보춘화만 지천이었다.

그리고 몇 해를 지나 다른 곳에서 깽깽이 풀꽃을 다시 만났다. 지금은 더러 서식지가 발견되어 보호종에서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만나기는 쉽지 않은 꽃이다. 깽깽이 풀 연보라 맑은 꽃잎과 눈을 맞추고 있노라면 참으로 황홀해진다. 순전한 꽃잎의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엎드려 사진 몇 장을 담으며 서식지가 훼손되지 않아 내년에도 여전히 순전하고 맑은 꽃잎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안심하세요` 란 꽃말이 코로나로 어수선한 요즘 나날에게 주는 위안의 인사로 들려온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 반곡지 그리고 복사꽃

경산 반곡지는 필자가 한 해 몇 번씩 찾는 곳이다. 겨울이면 반곡지를 지키고 선 왕버들은 나뭇가지 뼈의 앙상한 데칼코마니를 얼음 수면 위로 펼쳐 놓는다. 텅 빈 그 풍경 속에 앉아 있노라면 겸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더러는 삶의 아픔에 위로를 얻기도 한다. 봄이면 수령 수백 년 된 왕버들의 싱그럽고 풋풋한 자태를 만날 수 있고 여름이면 시원한 녹색바람을 친친 몸에 두를 수도 있다.

봄날 지금 반곡지에는 복사꽃과 왕버들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다. 복사꽃 그늘 아래 서면 도화살(桃花煞) 없이도 바람나고 싶다. 싱숭생숭 가슴 들뜨게 하는 복사꽃은 밀양을 지나 청도를 들어서면 산비탈 여기저기 분홍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하다. 요샛말로 심쿵 풍경이다. 이런 복사꽃을 시인 묵객들이 그냥 두었을까.

ⓒ 웅상뉴스(웅상신문)
복사꽃을 노래한 글들을 옮겨보면 낭만주의 시인 이백(李白)은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니 별천지`라고 산중문답에서 읊는다. 어느 시인은 `봄비에 붓을 적셔 복사꽃을 그린다` 고도 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회근시(回巹詩)에 `짙은 복사꽃 화사한 봄빛이 신혼과도 같다` 어쨌거나 복사꽃은 어지럼증을 일으키게 하는 꽃이다. 요염한 여인 꽃이다. 무릉도원 별천지의 꽃이다.

혼자 살아도/ 꽃은 꽃으로 피는구나/ 봄물이 올라/ 온몸에 꽈리 일고/ 타오르는 색정에 젖어/절로 터지는 진분홍 소리/ 왜 그 소리를 모른 체 하는가 – 이생진 `복사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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