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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영주 칼럼

아버지와 딸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1.03.22 13:48 수정 2021.03.22 01:48

원암 장 영 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웅상신문 칼럼위원

ⓒ 웅상뉴스(웅상신문)
모 종편 방송국이 매년 개최하는 ‘미스 트롯 경연’이 국민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장장 5개월에 걸친 레이스를 마침내 끝냈다. 등용된 가수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삶의 이야기들은 계속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경연의 남, 여 가수들은 더욱 높아진 기량을 선보였지만 상위 수상가수들의 삶의 이야기 자체가 하나같이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제 2회 미스 트롯 진으로는 ‘제주 댁’이라는 애칭의 두 아이 엄마인 양지은 씨(32세)가 등극하였다. 양지은 씨는 결선에 들지 못하여 제주로 귀가하였다가 대타로 급거 상경하였다. 연습 시간도 별로 없이 동참하여 구비 구비 선전하더니 진의 왕관을 차지하며 ‘신데렐라’가 되었다. 투병중인 아버지에게 신장을 때어 드린 양지은 씨의 “수술 후 뱃심이 약해져서 더 이상 판소리를 할 수 없었다.”는 담담한 고백에 온 국민은 자기 일처럼 가슴이 저렸을 것이다.

착한 마음과 선한 얼굴의 양지은 씨가 부른 ‘아버지와 딸’은 1절 만으로도 올 하트를 받았다. 이번의 입상 곡 중에는 흔한 남녀의 애증타령보다 부모님을 기리는 노래가 유난히 많았다. 14세의 김다현 양은 ‘어머니’, 10세의 김태연 양은 ‘아버지의 강’을 불러 나란히 3위, 4위로 입상하였다. 최후까지 경합한 2위의 홍지윤 씨가 부른 ‘엄마 아리랑’은 단시간에 누적 조회 수 900만 뷰를 달성한다.

‘노래’는 육신에서 발생되는 가장 원초적인 ‘놀이’이다. 가슴에 쌓인 한과 흥을 ‘글’과 ‘그림’보다 즉각적으로 생생하게 표출하고 전달 할 수 있다. 우리민족의 가무에 대한 솜씨와 신명은 하늘에 대한 제사를 올리며 동이족으로 불리던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晋)의 진수(陳壽, 233∼297)‘는 자신의 저서 ‘삼국지위지동이전’에 동이족을 제천의식과 함께 ‘가무음곡’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라고 기록하였다.

“동이의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에 며칠을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밥 먹고 노래 부르고 춤춘다(連日飮食歌舞)”. 이때는 상하가 어울려 구분 없이 먹고 마시면서 노래와 춤을 즐기는 데, 신분이 엄격하게 구분되는 중국의 계층음악 문화와 사뭇 다른 한민족 고유의 신바람과 흥이 DNA로 존재한다. 미국인 선교사도 “조선은 어린이들까지도 길에서 늘 노래를 부를 정도로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고 지금도 중국의 56개 민족 중에서도 조선족의 가무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수준이다.

우리 전래의 국악은 ‘천지인 합일’의 철학적 규범에 따라 민족 무예인 택견과 한글, 아리랑처럼 세 박자로 구성 되어 있어 깊은 감성에 호소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쉽게 부르고 널리 전하기에는 오랜 연마와 내공이 요구된다. 그러나 ‘빠르게 걷기’라는 ‘트롯(trot)’은 4분의 2박자(4박자)로 삶의 희로애락이 물결치는 강물과 인생길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토해내기에 적합하다. 우리나라의 트롯 풍의 음악은 1920년대 후반,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성장하였다.

저잣거리 백성들도 나라 잃은 가슴속의 설움을 쉽게 토해 낼 수 있어 일제의 눈을 피해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등 국민 애창곡이 되어 널리 유행하였다. 독립의 기쁨도 잠시, 청천벽력 같은 6.25 동란으로 감당 할 수 없는 엄청난 파괴와 이별, 아픔, 생존의 절박함이 국토를 뒤 덮는다. 가난과 후진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한 1960년대 새마을운동과 1970년대의 급속한 공업화로 많은 농민들이 쫒기 듯이 고향을 떠난다.

목숨을 담보로 한 월남전 파병, 가족을 위하여 이역만리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의 삶 등등. 역사의 고비마다 나타 난 수많은 망국인과 실향민들의 삶이 질기고 고단하게 이어진다. 강렬한 귀소본능과 가족사랑이 유난히 깊은 우리는 아버지 같은 고국과 어머니 같은 고향을 잃은 서러움과 삶의 무게를 구성진 한가락 트롯으로 풀어내면서 내일을 기약하였다.

이때 트롯은 정형화된 리듬과 절절한 꺾기창법이 가미되어 국민의 가슴속에서 독립된 가요장르로 살아 진화한다. 시리고 고된 인생의 무게를 지게지팡이처럼 버티어 준 트롯 유행가들은 가장 대중적이었지만 가장 흔한 대접을 받아 왔다. 최근엔 스타 원로와 젊은 가수들, 뛰어난 기획력에 힘입어 잡초 같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국, 내외에 그 진가를 떨치나가고 있다.

특히 ‘대한외국인’이라는 애칭의 미국 여인 ‘마리아(’20세)도 선발되었다. 미국 뉴저지 출신의 노랑머리 푸른 눈의 아리따운 처자 마리아는 K-팝에 빠져 무작정 한국으로 왔으나 그만 k-트롯에 빠져버린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이시라니 ‘묻지 마 한국사랑’의 DNA가 ‘효와 충’의 주인공이다. 마음속에 코리안의 가족사랑, 나라사랑이 가득 넘치는 마리아 양은 앞으로 K-트롯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효는 만행의 근본’이라고 배워온 우리에게는 하늘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비추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 민족의 진리서인 '참전계경 제290사'에는 '천심(天心)'에 대한 가르침이 밝게 전해 온다.

"천심은 배운 바는 없으나 다만 하늘같은 마음이 있어 선으로 향함이니, 착한 행실이라 일러주면 따르고, 착한 일이라 일러주면 행하며, 착한 마음이라 이르면 베푸나니, 비록 어짐의 길을 실천하지 못할지라도 착하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음이니, 그는 가히 그 복을 받을 수 있느니라." (天心者 無所學而只有天心之向善也 云善行 從 云善事 作 云善心 施 雖不蹈仁 不善 不爲 可領其福).

트롯은 우리의 근, 현대 역사를 ‘울다가 웃다가’ 함께 이어온 우리자신의 노래이다. 최근 k-시네마의 영광과 블랙 핑크, BTS 등 k-팝 가수들의 눈부신 활약에 이어 곰삭은 우리네 k-트롯도 머지않아 지구촌을 풍미할 것이다. 천심에서 우러나온 우리의 k-문화가 코로나 판데믹으로 어두워진 지구촌에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거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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