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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에는 시적 기억이라 일컬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지대가 존재해서 우리를 매료하고, 감동시키고,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기록되는 모양이다. 토마시가 테레자를 안 후부터 어떤 여자에게도 그의 뇌 속에 있는 이 지대에 아주 사소한 흔적조차도 남길 권리가 없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아주 특별한 지대가 있다고 한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내게 특별한, 동경의 지대였다. 그런 내게 우연히 동유럽 유작정 한 달 살기 기회가 왔고 합류했지만 어떤 여행이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 점이 약간 불안했지만 두 번의 짧은 패키지 일정 이외 남은 날들은 스스로 결정해서 여행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자유여행, 그나마 정해진 숙소에 9명이 살면서 각자 나름의 여행 추구, 즉 안전지대에서 자유여행을 실험할 수 있다는 것도 호기심을 유발했다.
2023년 3월 31일 오후 5시 29분 드디어 프라하공항에 도착했다. 약 12시간의 긴 시간을 자다가 영화보다가 드로잉하다가 도착한 프라하공항에는 한국인 전용 출구가 있고 한국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라하공항에 대한항공의 지분이 있다나.
리무진에 짐을 싣고 데친으로 가는 길의 풍경은 푸른 들판과 진회색 구름이 낮게 드리어져 있고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간간이 나타나는 집들은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다. 만약에 단둘이 사는 부부가 사이가 나쁘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스릴러 영화에 나오는 배경처럼 고요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풍경 속으로 숙소 앞 데친역에서 기차를 타고 스위스의 바젤, 헝가리 부다페스트, 루마니아,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 비엔나 등을 갈 수 있다는 데친 케이하우스 이기영 대표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퍼져 나간다. 저녁이나 아침 일찍 기차를 타면 스위스 바젤과 파리도 갔다올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 상상만 해도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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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 뒤 드디어 케이하우스에 도착한다. 어둠에 잠겨 있는 케이하우스 앞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고 각자 배정된 방에 짐을 푼다. 고재열 여행감독과 케이하우스 이기영 대표가 기획한 체코 한 달 살기 참여 인원은 모두 방 하나 차지해서 한 달 살기를 시작한다. 방 배정은 등록한 순서대로 자신이 원하는 방을 정했다.
3월 사송아파트 입주 때문에 미루고 미루었다. 은행 대출금리가 올라가고 정부가 중과세를 때리는 바람에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거의 거래가 되지 않았다. 마감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고민 끝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등록했다. 다행히 집 매매가 이루어졌고 무사히 이사했고 마음 편하게 여행을 왔다. 암튼 맨 마지막에 등록한 내 방은 욕실은 공용이지만 침대와 책상, 옷장 등이 고흐의 노란 방을 연상케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여행지에서 이만하면 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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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친 케이하우스에 입주한 9명, 각자 자신의 방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겠지. 두 번의 간단한 여행 일정 빼고는 각자의 선택으로 여행을 만들어가야 한다. 하루하루 어떻게 꾸려갈까. 사실 나 또한 당장 눈앞에 닥친 내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아무런 계획이 없다. 30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딱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안다. 바로 기대감이다. 설렘이다. 호기심이다. 무슨 일이든 새롭다는 것이다.
한 달 살기의 매력은 바로 불확실한 여행이다. 데친에서 시작하여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될지 불확실하다. 그것이 바로 가슴을 뛰게 만든다.
게다가 여긴 체코슬로바키아가 아닌가. 그렇고 오고 싶었던 나라가 아닌가. 물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읽은 시간도 없이 왔지만 그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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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주방에 모인다. 이기영 대표가 준비한 저녁을 먹고 와인으로 쨍, 건배하면서 체코 입성을 서로서로 축하한다. 와인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달콤한 맛이 오래 입안에 남는다. 각자 자기 소개를 한다. 서울에서 온 분이 6명, 부산 3명이다.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이다. 은은한 불빛이 떠다니는 데친 케이하우스 주방은 와인과 기대와 설렘과 웃음과 희망과 꿈으로 출렁거린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이란 우리는 마지막 역에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는 함께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