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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 하르잠. |
ⓒ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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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기류를 만나 긴장 속에 10여 시간을 지나 내려선 징키스칸 국제공항의 모습은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작았다. 지금은 현대식 공항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당시에는 국내 지방공항의 규모에도 미치지 못한 작은 공항이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입국장으로 나오니 환영 나왔던 이들도 한결같이 지친 모습들이었다, 편의 시설도 넉넉지 않은 공항에서 7여 시간 동안 긴장과 염려 속에 마음고생 몸 고생을 한 터라 힘들었을 것이다. 몽골의 한 대학에서 KOICA(한국국제협력단) 단원으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딸아이도 염려 속에 지쳐 만나는 순간 반가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딸 아이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2시간 정도 가야 하는 몽골 제2 도시 다르항(몽골어: Дархан)에 거주하고 있었다. 공항 도착이 너무 늦어 다르항으로 가지 못하고 울란바토르에서 KOICA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단원의 숙소에서 몽골의 첫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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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매화 |
ⓒ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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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는 한국 정부의 대외 무상 협력사업을 주관하는 국가기관이다. 주관은 외교부가 담당하고 있다. 단원들은 일반 여권이 아닌 외교관 여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국가가 인정한 재능으로 개발도상국을 위한 무상협력 사업의 일원이 되어, 각자의 임지에서 민간외교관 역할 수행을 하는 것이다. 1991년 코이카 해외 봉사가 시작되기 전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선진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수혜 국가였다. 타국의 오지에서 무보수로 온전히 국제사회에 봉사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KOICA 단원들의 활동과 현지 생활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딸아이는 교수 자격으로 임지 다르항 대학에서 컴퓨터 가르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대학에 가서 보니 컴퓨터가 없어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 국내 생산 컴퓨터 부품을 항공 수송으로 받아 50여 대를 직접 조립했다고 했다. 자랑스럽게 ‘내가 만든 강의실’이라며 나에게 강의실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다르항 대학 외국인 교수로서는 1호 명예교수가 되었다는 자랑도 함께 하는 딸아이가 대견스러웠다. 기실 이번 몽골여행은 대학 여름방학 휴가 기간을 이용해 몇몇 코이카 단원들과 함께하기로 한 것이었다.
첫날밤을 울란바토르에서 보내고 오전에는 울란바토르 시내를 돌아보고 오후에 다르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다르항에서 딸아이가 이동할 때 자주 이용한다는 택시가 우리를 태우러 다르항에서 울란바토르로 왔다. 너무도 눈에 익은 차 소나타였다.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중고 차량이 몽골 초원을 누비고 있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만난 ‘사랑첵첵’ 외에 처음 만나는 몽골인이다. ‘체릉’ 이란 이름을 가진 운전기사는 유순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몽골어로 운전기사를 ‘절러치’라고 했다. 접미사 ‘치’가 붙으면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 이란 뜻이란다. 우리말의 ‘갖바치, 장사치, 심지어 불량한 양아치도 고려가 몽골의 간섭기에 있을 때 영향을 받은 것일 거라 한다. 울란바토르를 출발한 택시가 다르항을 향해 달리는 길이 고속도로였는데 마치 우리나라 시골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같았다. 고속도로를 ’하르잠(검은 길)‘이라고 했다. 거의 비포장도로인 몽골에서 아스팔트는 곧 고속도로였다. 한때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이던 ’D건설사’가 건설했다는 하르잠은 감감해 끝이 어딘지도 모르게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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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초원 |
ⓒ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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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택시의 차창 밖으로 몽골의 유월의 초원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골담초 노란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초원을 지나고 나니 금매화가 피어 평원에 황금색 주단을 깔았다. 눈도 가슴도 이렇게 호사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몽골의 풍광에 빠져 환호와 감격을 이어가며 그렇게 달려 다르항에 닿았다. 다르항은 수도 울란바토르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지만, 마치 우리나라의 작은 읍 소재지 정도로 보였다. 한반도의 7배가 되는 국토에 인구가 300만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거기다 유목민의 나라고 보니 정착인구가 적어 도시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다. 다르항 도심에 내려 작은 언덕을 넘어 딸아이의 숙소까지 걷기로 하였다. 여행의 설렘과 떨림은 언제나 옳은 것이다.
들판을/ 기어가는 뱀처럼/ 길은 구불구불 놓여 있다/ 풀과 돌 사이를 비집고 흘러가는 강처럼/ 길은 저절로 휘어져/ 풀밭에 이리저리 뒤척인다// 예로부터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저 대초원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말달리며 살아갔던 것인가/ 이 길을 걸어간/ 그 많은 영웅과 호걸 모두 어디로 갔나// 오늘도 길은//밤에 별을 보며 나아가던 사람들/ 혹은 제 갈피를 못 잡고/ 터벅터벅 헤매는 사람의 갈 곳을 일러 주느라/ 저 들판 지평선 너머로 온종일/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이동순 詩 [대초원의 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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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숙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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