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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산책

길을 떠나다 23/ 몽골 여름여행(1)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2.12.30 15:01 수정 2022.12.30 03:01

ⓒ 웅상뉴스(웅상신문)
혹한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곳곳에 눈 폭탄이라고 할 만큼 많은 눈이 내렸다. 그리고 몰아친 강추위 앞에 소위 방콕(?)의 나날들이다. 추위를 생각하면 예전이 더 심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구레빠(일본식 명칭인데 우리말은 그 옷감을 지칭하는 말이 없다.) 교복 치마 속에 보온내의도 없이 검정 스타킹 하나로 겨울을 지냈다. 북풍이 몰아치면서 교복 치마가 다리에 감겨들기라도 하면 몸이 얼어 굳어버릴 것 같은 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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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연탄불에 물을 데워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고 돌아서면 머리카락 끝에 자잘한 구슬로 맺히던 얼음 방울, 강추위 뉴스가 이어지지만 지금 추위가 그때만 하겠는가. 난방 잘 된 집과 때에 따라 쓸 수 있는 난방기와 24시간 온수를 쓸 수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의복도 오리나 거위 솜털이 충전재로 쓰인 방한복이 겨울 일상복이며 심지어 발열 방한복도 있으니 이쯤 추위를 이겨내는 일은 거뜬하리라.

한강이 얼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겨울의 중심에서 오늘은 시간이 한참 흐른 묵은 여름 여행 이야기를 풀어 본다. 징기즈칸의 나라 몽골리아 여행 이야기이다. 6월이었다. 여행경비를 아끼려고 청주공항에서 에어로 몽골리아 항공기를 이용해 여행길에 올랐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광활한 대지와 초원 그리고 양 떼 무리, 초원 속 흰 점같이 박혀 있는 게르 등을 떠올리며 미지의 땅을 찾는 흥분에 들떠 있었다. 비행기 출발시각을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부산의 한 대학에서 어학연수 중이라는 몽골 대학생 `사랑첵첵`과 몽골 대자연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를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의 좌석이 다행하게도 내 옆좌석이라 비행기 출발 전 두어 시간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지겹지 않게 보냈다.

드디어 출발, 굉음을 울리며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이륙했다. 미지의 세계로 출발이다. 허공에 떠 있기를 두 시간 남짓, 창 아래 멀리 엷은 구름 사이로 붉은 벽돌집들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아마 중국 상공을 지나는 것 같았다. 기내 화면에는 현재 고도가 8,000m이고 바깥 기온은 –42도 C라고 나타내고 있다. 이제 공중에 떠 있었던 시간만큼 지나면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이다. 어느새 창밖 풍경이 바뀌어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땅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드디어 몽골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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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쯤부터였다. 비행기가 좌우로 흔들리고 위로 솟구쳤다 아래로 내려앉는 등 요동을 쳤다.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많이 흔들리니 안전밸트는 꼭 채우라’ 방송이 나왔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청주 공항을 떠나온 지 3시간 반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도착지 울란바토르의 기상도 좋지 않아 비행기는 중국의 네이멍구 구도 후허하오터(呼和活特)공항에 임시 착륙을 했다. 

연료 공급을 받고도 비행기는 후허하오터 공항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밖은 중국 땅이라 나가지도 못하고 좁은 이코노믹석에서 꼼짝없이 있느라 온몸이 지쳤을 때쯤 비행기는 다시 울란바트로를 향해 이륙했다. 기내에서 위험한 순간들을 함께한 탑승객들은 긴 시간 동안 서로 친구가 되어 있었다. 20시 30분에 중국 후허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2를 넘기고서야 울란바토르 공항에 발을 내렸다. 4시간이면 족히 올 길을 무려 10여 시간 걸려 닿은 것이다. 긴 시간을 함께한 승객들은 수화물을 기다리는 동안 서로 가까운 사이가 되어 연락처를 나누기도 했다. 마중을 나왔던 아이도 공항에서 6시간을 기다렸다 한다. 고맙고 미안했다.

겨울에 따뜻한 여름 이야기를 하겠다고 널브려 놓은 사설이 너무 길었다. 여행이 계절을 따지겠는가. 눈을 찾아 떠나는 겨울 여행 낭만 가슴에 담고 지금 훌쩍 떠나도 좋으리라.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詩 <사평역에서>(1983)
↑↑ 강명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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