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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산책

길을 떠나다6 / 황국옥당가黃菊玉堂歌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1.11.03 10:09 수정 2021.11.03 10:09

강명숙 시인

ⓒ 웅상뉴스(웅상신문)
왠지 모를 아쉬움으로 젖어 있던 시월이 갔다. 십일월 지금은 가을이 농익은 만추의 시간이다. 사방에 불을 놓은 듯 산은 불타올라 말 그대로 만산홍엽이요 들판도 누렇게 물들어 넉넉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때쯤이면 짧게 살다가야 하는 가을꽃들도 흐드러지게 핀다. 산이나 들판에는 억새가, 습지나 강변에는 갈대꽃과 물억새가 피어 가을바람에 흰머리를 휘날리며 있는 모습은 가을 강과 더불어 쓸쓸함과 애잔함에 젖게 한다. 

그리고 여름부터 피어난 살살이 꽃(코스모스)도 가을 늦도록 환한 웃음을 머금고 피어 이 계절을 장식하고 있다. 겨울이 오면 떠나야 하는 늦가을 꽃, 연분홍빛을 담은 구절초와 연보라 쑥부쟁이가 낮은 산비탈과 길섶에 지천으로 피어 있지만, 가을꽃 하면 역시 국화이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 국화축제가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는 요즘이다. 우리 지역 양산에서도 국화축제가 `세계문화유산 통도사와 함께하는 2021 양산 국화전시회`라는 이름으로 영축총림 통도사 입구에서 펼쳐졌다. 

전면에 통도사와 무풍한송길 소나무들이 모래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국화전시장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찾아 다양한 모습의 얼굴과 색을 가진 꽃 사이를 오가며 벌 나비와 더불어 가을의 정취를 배부르게 만끽한다. 11월부터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가 적용되어서일까 전시회장을 찾은 이들의 마스크 속에 가려진 표정들이 한결 밝은 듯하다. 돌아 나오는 길 전시회장 모래조각에 열정을 쏟고 계신 모래조각가 김길만 선생을 만나 반가운 인사도 나누었다.

가을 국화를 만나고 나서 국화와 관련된 시를 떠올려 본다. 서정주 시인의 대표 시 `국화 옆에서`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국화 옆에서] 전문

저녁에 한 지인의 문자를 받았다. 황국黃菊 사진과 함께 보내온 문자 내용이 ‘조선 전기 문신 송순의 시조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를 기억하는지’ 하고 적어 보냈다. 명종 임금이 궁궐에 핀 가을 국화를 꺾어 옥당관玉堂官에게 주며 노래를 지으라고 하였는데 그 옥당관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송순이 대신 지어 임금에게 올렸다는 노래이다.

풍상風霜이 섯거친 날에/ 송순 (1493 –1583)

풍상風霜이 섯거친 날에 갓 피온 황국화黃菊花를
은반銀盤에 것거 다마 옥당玉堂으로 보내실샤
도리桃梨야 곳인 양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가을바람 불고 희끗희끗 서리가 내리는 날 갓 피어난 황국화를 임금께서 은반에 담아 선비들이 공부하는 옥당으로 보내셨네. 어찌하여 임금께서는 황국화를 다른 곳이 아닌, 옥당으로 보내셨는가. 복숭아꽃 오얏꽃 같은 사이비들아 꽃인 양 나서지 마라. 국화 같은 지조의 선비를 찾는 임금의 뜻을 모르겠느냐

ⓒ 웅상뉴스(웅상신문)
논어에 공자의 제자가 공자에게 `어떤 사람이 참으로 좋은 사람` 인지를 물었다. 그 물음에 공자가 `나는 자색을 싫어한다. 자색은 붉은색을 흐리게 한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 칭찬받으려는 사람은 사이비다. 좋은 이들에게는 착하다는 평판을 들어도 나쁜 자들에게는 비난받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라고 답한다.

송순이 옥당관을 대신하여 지은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는 사이비를 비판한 노래이다. 이 시조를 `기억하는가` 문자를 준 지인의 뜻을 현재의 정치판에 이입시켜 헤아려 본다.
강명숙 시인

양산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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