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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극수의 역사이야기

문화산책 / 통도사의 봄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1.03.04 13:43 수정 2021.03.22 13:43

강명숙 시인

ⓒ 웅상뉴스(웅상신문)
통도사의 봄을 만나러 가는 길, 산문 앞 주차장에 차를 두고 영축산문을 들어선다. 양산천 맑은 물길과 나란히 한 무풍한송(舞風寒松)길은 세심(洗沈) 길이다. 일주문 가까이 수양매는 아래로 드리운 가지에 연분홍 꽃을 달았다.

통도사의 봄은 영각 앞뜰에 선 `자장매`라는 이름을 가진 고매 홍매화의 개화로부터다. 나뭇가지에서 시작되는 봄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빠른 꽃이라 한다. 자장매가 필 즈음이면 절 마당은 야단법석이다. 소위 대포 카메라로 불리는 사진작가들의 카메라부터 범인들의 스마트폰까지 꽃을 담느라 셔터 소리가 요란하다. 그 틈새로 필자도 몇 장의 사진을 담는다. 해마다 자장매를 만나러 산문을 찾으니 아예 연례행사가 되었다.

북새통 사람들 사이로 알싸한 매향이 스친다. 신흠(申欽)의 `야언`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한 평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매화는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다. 선비의 기상과 지조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나도 이 가르침은 아직 시대를 겉돈다.

자장매를 만나고 난 후, 통도사에 딸린 암자의 봄을 만나러 극락암으로 발길을 옮겼다. 몇 해 전 삼월 초 봄눈이 내린 날 설중매를 보려고 통도사를 찾은 적이 있었다. 매화에 내린 눈은 이미 녹기 시작해 볼품이 없게 되어 있었다. 서운한 마음을 다독이며 극락암을 찾아갔다. 본 절 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극락암에는 눈의 흔적이 제법 남아 있었다. 삼소굴(三笑窟) 마당 산수유 노란꽃 위에는 마치 손가락으로 살포시 집어 올려놓은 듯 자잘한 꽃송이마다 눈이 얹혀 있었다. 눈 구경이 쉽지 않으니 이런 풍경은 아름다움이 지나쳐 신비스럽기조차 했다. 삼소굴 뜰에서 어디 세 번 만 웃었을까. 가벼운 웃음을 열 세 번도 더 웃었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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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첫 날 비가 오고 있다. 봄을 불러들이는 비 치고는 끄느름히 종일 내리고 있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전령사로 왔던 이른 봄꽃은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 자리에 계절 봄은 성큼 터를 잡고 꽃들의 정령을 깨워 곧 사방에 꽃불을 피워낼 것이다.

통도사 자장매와 영취매, 통도매는 이제 꽃잎을 떨굴 때라 말한다. 통도사의 이른 봄은 이렇게 떠나고 있다. 통도사의 짧은 봄이 아쉽다. 그 서운함을 당나라 여류 시인 `설도`의 시 `춘망사`로 달래본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강명숙 시인

양산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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