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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늘도 '히스클리프'를 꿈꾼다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12.08.17 12:56 수정 2012.10.03 12:56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

어린 시절,나는 유난히 자연 속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포도나무 밑에서 '폭풍의 언덕'을 읽고 뒷동산에서 '그리스 신화'를 읽고 단감나무 위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몸과 마음이 이를 데 없이 상쾌해진다. 벅찬 가슴속으로 달콤한 향기가 가득 밀려들어 오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읽은 수많은 책 중에서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섬세하게 영상화되어 있는 것은 '폭풍의 언덕'이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들판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티없이 맑은 사랑은 애정을 그리워하는 사랑과는 달리,서로의 영혼이 완전하고도 무의식적으로 결합되는 기쁨이다. 에드가와 결혼했지만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는 그녀의 진정한 자아,그녀의 본질,그녀 이상으로 그녀 자신이었다. 폭풍의 언덕,하워스에서 외롭게 살다가 28세에 요절한 에밀리 브론테가 창조한 히스클리프는 오랫동안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죽은 연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는 그의 영혼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 얼마나 멋진 사랑인가.

아무튼 그때 그 시절에 잉태된 꿈으로 인해 나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 환상으로 사랑과 미지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 모든 것들을 아주 멋지게 쓸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 책을 읽은 지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나는 폭풍의 언덕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셈이다.

얼마 전,뇌의 주름 속에 박힌 기억을 재편집하며 '폭풍의 언덕'을 다시 손에 들었다. 작가의 가치관이 주변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을 창조했을까. 이 작품을 읽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작품을 해체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읽는 내내 생각했다. 이야기에만 푹 빠져 독서하던 시간들이 새삼 그리웠다. 뒤돌아보면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거대 도시의 치열한 경쟁과 소외,삭막한 관계만 있는 삶을 견디게 했던 힘은,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읽었던 책들이 베푼 음덕이었다.

요즘 나는 새로 구상하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 또 다른 히스클리프임에 고심하고 있다. 이제 사랑 타령은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갈등과 배신으로 점철된 수십 년의 세월이,수천㎞ 떨어진 나라들이,감정적이고 뜨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겹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책 속에 풍덩 빠지고 싶은 밤이다. 이것 또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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