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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야기가 있는 풍경

천하의 신비를 간직한 석아미타불입상

김경희 기자 입력 2012.10.02 19:40 수정 2012.10.09 07:40

웅상에는 사찰이 참으로 많다. 깊고 장엄한 산들로 둘러싸인 만큼 산 속에 많은 절을 품고 있다. 신라 시대에는 89개 암자가 있었고 천 년이 훨씬 지난 현재에도 원효의 입김이 서린 채, 흥룡사, 내원사, 안적암, 조계암 등 20개에 가까운 사찰과 암자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작년 이맘 때 웅상에 와서 제일 먼저 가 본 곳은 미타암이다. 수려한 자연 경관도 볼만하지만 기도의 효험도 뛰어나다는 미타암. 오래간만에 그곳을 찾았다. 웅상 도서관 앞 주유소에 매 시간마다 절에 올라가는 버스가 있어서 쉽게 갈 수가 있지만 걸어서 올라갔다. 날씨도 많이 풀렸고 걸어가면서 생각할 것도 좀 있었다. 저수지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자 빽빽하게 나무가 들어선 산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길은 한적하고 쌀쌀하고 차가운 공기가 기분 좋게 느껴지고 멀리 들여다본 산 속은 넓고 깊었다. 겨울산의 정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맑고 투명한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인(鑑於人)이란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춰보라는,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 우리 조상들이 깊이 가슴에 간직한 잠언이다.
나는 물이 아니라 깊디깊은 산 속을 들여다보면서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삶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가장 삶다운 삶을 살고 말년에 후회하지 않을까.
구불구불 곡선으로 이어진 산길을 쉬엄쉬엄 올라갔다. 마침내 해발 812미터의 천성산 8부 능선에 위치한 미타암에 도착했다. 난간에 서서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암자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여러 면에서 경주 석굴암과 유사하여 인근 주민들에 의해 제3의 석굴암이라고 불리우는 석굴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인 아미타불입상이 모셔져 있었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육계(?)와 어깨까지 내려온 긴 귀, 풍만하면서도 우아한 훌륭한 인상, 왼손을 몸에 붙여 곧바로 내리고 오른손을 가슴에 댄 모습, 그리고 둥근 어깨와 평판적인 가슴, 대좌 위에 곧바로 선 자세 등.
이를 보고 통일신라(719년)때에 만들어진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삼국유사” 피은 8에 기록된 서방 극락세계로 날아간 다섯 비구도 이 석굴에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아미타불입상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온화한 미소를 띤 아미타불은 그런 나를 조용한 눈길로 응시했다. 마치 날 지켜주고 응원해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면에 저절로 힘이 차올랐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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