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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내가 만난 세상] 뜻밖의 외출에서 배움을 얻다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5.06.18 08:20 수정 2025.06.18 08:20

정영나 에세이 글쓴이

↑↑ 정영나 에세이 글쓴이

나는 엄마의 보호자다. 엄마는 18년 전에 뇌출혈 후유증으로 언어와 인지에 장애가 있으시다. 그래서 엄마는 혼자 다닐 수 없으셔서 어디든 항상 누군가가 동행해야 한다. 운전하는 언니들과 다닐 때는 차로 다니니 별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운전을 못 하는 나와 단둘이 나설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므로 엄마와의 외출은 긴장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엄마를 모시고 외출하는 건 여전히 염려된다. 이럴진대 간혹 멀리 가야 할 경우는 걱정과 긴장을 잔뜩 하게 된다.

얼마 전에 아주 오랜만에 이런 긴장감을 느낀 외출을 감행했다. 몇 주 전, 엄마, 큰언니와 셋이서 캠핑을 하고 있었고 뒤늦게 합류한 작은 언니가 김해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아귀찜을 포장해 와서 저녁으로 먹었다. 이때 먹은 아귀찜을 먹으러 김해까지 가는 거였다. 외출한 토요일은 원래 나갈 계획이 없었다. 그날은 작은 언니가 다시 김해에 갈 일이 생겼고 그때 캠핑장에서 먹은 아귀찜을 포장해 와서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특별식을 먹으면 또 먹기까지 시간이 걸리곤 하는데, 이렇게 생각이 날 만큼 캠핑장에서 맛있게 먹었다는 의미다.

전날에 작은 언니가 다른 제안을 했다. 자기가 네다섯 시에 아귀찜을 포장해 오면 음식이 식어서 먹을 때 다시 데워야 하니, 엄마와 지하철을 타고 김해까지 오는 건 어떠냐고. 나들이 삼아 불암역까지 와서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본인을 기다리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생각해 보니 음식점에 가서 먹으면 일회용 용기도 쓰지 않을 테고 바로 만든 아귀찜은 더 맛있을 것이며 더군다나 엄마와 운동 삼아 움직이는 게 괜찮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카페 가기를 즐기시는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의사를 여쭈니 가시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잠들기 전에 경로를 검색했다. 종착역은 “불암역”이었다. 난생처음 들어봤다. 1호선을 타고 연산역에 내려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대저역에 내려서 다시 경전철을 타야 했다. 이제껏 부산에 살면서 대저역도 처음이고 경전철도 처음이었다. 나 혼자 처음인 장소는 아무렇지 않다. 잘못 가면 돌아가면 되고 멀고 힘들면 참고 견디면 된다. 하지만 엄마를 모시고 처음인 곳은 온갖 걱정이 쏟아진다.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는 것도 그렇고 거리가 먼 것도 그렇고 염려가 됐다. 괜히 간다 그랬나 싶으면서. 엄마와 둘이 기차를 타고 서울도 가고 대전도 갔으면서 뭐가 그리 걱정인 것인지.

내가 걱정한 것과 다르게 엄마는 아침부터 들떠 계셨다. 언제쯤 집을 나설 것인지 묻고 또 물으셨다. 나는 엄마께 점심을 좀 일찍 먹고 준비해서 나갈 것이라 말씀드렸다. 엄마는 외출 준비 내내 신나 하셨다. 옷도 예쁘게 입고 싶다고 하시면서 나보고도 예쁘게 입으라고 하셨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니 그냥 편하게 입겠다고 했다. 1시가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3호선을 갈아타는 건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 자주는 아니어도 지금까지 오랫동안 계속 반복해 온 경험 때문이었다. 익숙한 길에서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3호선 종점인 “대저역”은 처음이었다. 3호선은 개통하고 몇몇 역만 가보았을 뿐 사실 안 가본 역이 대부분이었다. 3호선만 그럴까. 부산 지하철 전체 역을 쭉 훑어보면 가보지 않은 역이 수두룩하게 빽빽하다. 이런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가보지 않은 지하철역에 내려 근처에서 놀기’를 해봐도 되겠다는 재미난 생각을 했다. 익숙한 1호선과 달리 오랜만에 3호선을 타신 엄마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셨다. 지하철 문이 어느 방향으로 열리는지도 유심히 보셨다. 반대 방향으로 열리는 문까지 신기해하셨다. 그러다 구포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오면서 이제껏 보지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더욱 장관인 것은 바로 낙동강을 건너면서 강서구청역으로 이동할 때였다. 지하철을 타면서 이런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 한강을 건너는 것 못지않게 너무나 멋졌다. 부산에서도 이런 경관을 맛볼 수 있었다니! 덕분에 나오길 참 잘했구나 싶었다.

대저역에 내려서 경전철로 갈아탔다. 자주 고장이 난다는 뉴스를 종종 접했던 터라 타면서도 걱정이 좀 됐는데 아무 탈 없이 불암역에 내렸다. 엄마와 처음인 곳이라 미리 알아둔 카페까지 실수 없이 가기 위해 다시 핸드폰으로 동선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이동했다. 몇 분 걸어서 카페에 무사히 도착했고 그제야 안도했다. 엄마가 편안하게 앉아계실 수 있는 의자로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했다.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책을 읽으며 작은 언니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작은 언니가 왔다. 음식점으로 이동해서 이 여정의 최종 목적이었던 아귀찜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아귀찜을 먹기 위한 외출이었다. 그렇지만 많은 생각이 오가는 하루였다. 엄마의 모습에서 삶의 태도를 다시금 되새겼다. 나이가 들어도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최근에 읽은 <우리, 나이 드는 존재>라는 책에서 에세이스트 김하나도 호기심을 연마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자주 접하는 말이라도 자꾸 그 마음을 잃었다. 외출하는 것에도 소풍 가는 아이처럼 신나고 즐거워하시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 가득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에서 그런 마음을 견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마음이라면 일상이 여행 같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위한 어떤 장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그리 멀지 않은,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는 것만으로도 여행 같은 일상을 살 수 있을 듯하다. 앞으로 엄마와의 외출에 염려보다는 설렘과 호기심을 가득 채우고 집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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