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기고

[내가 만난 세상] 오월이 나를 살게 한다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5.05.21 12:00 수정 2025.05.21 12:00

정영나 에세이 글쓴이

지금은 오월이다. 봄의 끝자락이면서 여름의 길목에 들어서는 달이다. 2025년이 시작되고 무척 기다린 오월도 어느덧 반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나는 열두 달 중 오월을 가장 좋아한다. 이유는 내가 태어난 달이기 때문이다. 

오월을 내가 태어난 달이라고 해서 일찍부터 무조건 좋아한 건 아니었다. 언제부터 오월을 좋아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매년 오월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오월은 1년을 살게 하는 힘을 축적하는 달이기에 그저 생일을 축하받는 단순한 의미의 달만은 아니다.

생일은 탄생을 축하받는 날이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학생이던 시절까지는 오로지 나의 탄생에 대한 축하만 바랐다. 세상에 태어난 내가 축하받아 마땅하다고 전적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믿고 있던 나는 어느 한 날, 생일이 자신의 축하보다 먼저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날이라는 말을 들었다. 언제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이 말은 나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어버이날이 부모님께 감사를 표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오히려 생일에 부모님께 감사를 전해야 한다는 걸 알게 했다. 이때부터 나는 생일에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를 썼다.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다 나의 존재에 회의감이 든 적이 있었다. 엄마가 나를 낳고 매우 아프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을 듣고도 그러셨나 보다 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꽤 흘러 우연히 엄마의 오래된 가계부를 보았고 그때 엄마가 쓴 간단한 메모를 읽게 되었다. 나를 낳고 집에 와서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아서 결국에는 다시 입원했다는 내용이었다. 

정영나 에세이 글쓴이

아프셨다는 걸 말로만 들었을 땐 크게 와닿지 않더니 엄마의 필체가 왠지 모르게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순간 나를 낳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아프지 않으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릴 적에 엄마는 참 자주도 아프시다고 생각한 것마저 죄송했다. 자녀를 낳는다는 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 일임을 알고 나서는 엄마가 더욱 애틋해졌다.

그렇다고 나의 탄생이 늘 감사함으로 충만하지는 않았다. 어려운 일이 닥치고 힘든 일로 삶이 버거울 때면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님을 탓했다. 왜 이렇게 삶은 힘들기만 하고 왜 이런 세상에 나를 내놓았느냐고 말이다. 꽤 오랫동안 나는 이런 생각으로 뒤틀려 있었다. 18년째 엄마를 간호해 오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말이 되지 않는 일일 테다. 

이런 상황을 버티면서 살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삐딱해지고 덩달아 내면도 함께 삐뚤어지기 때문에 만사가 부정적으로 된다. 잘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 애를 써도 애쓴 만큼 잘 살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리된다.

겨우 살만하다 싶으니, 아빠가 곁을 떠났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삶의 의욕조차 상실했다. 삐딱한 시선과 삐뚤어진 내면이 근근이 바로잡혀지나 싶었는데, 도루묵이었다. 아빠가 떠나고 1년 동안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조차 없다. 그러나 그런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삶에서 의미를 다시 찾게 된 건 바로 “엄마”로 인해서였다. 

18년 전 엄마가 쓰러지시면서 나의 삶은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힘겨웠다. 달라진 엄마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외출 한 번 하는 것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그래도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아빠가 계시기에 견딜 수 있었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아빠는 나의 버팀목이었다. 이런 아빠가 없는 세상은 암흑과도 같았다.

어둠이 내린 세상에 빛을 드리운 건 엄마였다. 엄마가 아프시면서 힘겨운 시간을 지나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텐데, 그럴지라도 엄마의 세 끼를 챙기고 엄마를 돌보는 일이 나를 살게 했다. 책임감 있는 일이 내게 없었다면 나의 삶은 피폐해졌을지도 모른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p142)” 아빠의 빈자리는 삶의 의욕을 잃게 할 만큼 절망적이었지만 엄마를 돌봐야 하는 책임감이 나를 지금까지 살아있게 했고 앞으로 계속 살아야 할 의미이기도 하다. 이 의미는 어떤 어려움도 견디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이렇듯 나에게 오월은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달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어떤 특별한 이유가 없을지라도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살아간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이를 특별하게 생각하면 삶이 소중해진다. 나는 엄마를 위해서 산다. 이것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다. 나의 삶이 꼭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엄마를 돌보면서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나는 한없이 기쁘다. 누구나 엄마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게 달갑지 않았던 때가 참으로 길었지만, 이제는 나의 존재가 소중하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내가 기특하고 참으로 고맙다. 나를 토닥여 주고 싶다. 이 기운으로 내년 오월까지 열심히 살아보련다.


저작권자 웅상뉴스(웅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