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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현주 전 부산일보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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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은 흔히 권모술수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찬찬히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정치 이론가인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복권을 넘어, 외세에 산산조각이 난 조국 이탈리아의 통합과 공화정치의 복원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 이 책을 썼다.
마키아벨리는 1498년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하여 주로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러나 1512년 스페인의 공격으로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家)의 군주정이 복원되자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메디치 정부에 대한 음모에 연루돼 투옥되기도 한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조반니 추기경이 교황 레오 10세로 즉위하자 특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그는 석방되자마자 공직 복원의 꿈을 안고 1513년 『군주론』을 집필했으나 그의 꿈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군주론』을 관통하는 정치사상은 무엇보다 냉철한 현실주의다. 현실주의 사상은 군주에게 단순히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규범에 구애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나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역사를 통해 정치적 이상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던가 생각해 보면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정치이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 새로운 형태의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하기 힘든 일은 없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사람들은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을 추진하는 군주는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장한 예언자는 모두 성공한 반면,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했다”는 유명한 구절이 여기서 나온다. 힘이 있어야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
12.3 내란 이후 내란수괴 윤석열의 탄핵과 법적 처벌을 둘러싸고 집요하게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의 행태를 생각해 보면 마키아벨리의 통찰에 놀라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인민(국민)의 집단지성을 믿지 않는 편이다. 인민은 변덕스러우므로 군주의 계획을 더이상 믿지 않는 경우엔 힘으로라도 그들을 믿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지키는 데 자국 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용병과 외국의 원군은 무익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본다. “용병이란 분열되어 있고, (지도자가) 야심만만하며, 기강이 문란하고, 신의가 없다. 원군은 그 자체로는 유능하고 효과적이지만, 원군에 의지하는 자에게는 거의 항상 유해한 결과를 가져다줬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항상 강력한 자국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마가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멸망했음을 상기해 보라. 신라 삼국통일 과정에서의 당나라의 군사적 지원, 구한말 일본·청나라·러시아의 한반도 진출, 광복 후 미군과 소련군의 진주 등 한반도 역사를 통해 원군에 의존한 비참한 결과 또한 마키아벨리의 지적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언제 미군 의존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국방을 실현할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는 현명한 군주는 신민들의 결속과 충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비난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군주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 일반적으로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위험을 피하려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두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약속을 어디까지 지켜야 할까?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할 때, 혹은 약속을 맺은 이유가 소멸할 때,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신 군주는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한다고.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의 지혜가, 강한 자(늑대)를 혼내주기 위해서는 사자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이 같은 인식은 당시 국가 간 수많은 평화조약이 힘과 이익의 향배에 따라 파기되고 무효화 된 국제 질서를 목도한 마키아벨리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군주론』은 제목만 보면 군주국가를 지향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피렌체의 굳건한 ‘공화정’ 건설과 뿔뿔이 찢어진 이탈리아 통합을 향한 마키아벨리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념·지역·세대·계층 간 골 깊은 갈등에 시달리면서 엄혹한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오늘날 한국적 상황에도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6월 3일은 대통령 선거일.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용기’를 지닌 지도자는 과연 누구일까? 결국에 국민 수준이 지도자의 수준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우리 스스로 똑똑해져야 똑똑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음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