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획 연재

[유럽 인문학여행15]체코의 화가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 “예술가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4.11.01 04:58 수정 2024.11.01 04:58

김서련 소설가

ⓒ 웅상뉴스(웅상신문)
체코 여행에서 최고의 행운은 아르누보의 창시자 알폰스 무하를 만난 것이다. 레드니체 성을 떠나 모라브스크 부데요비치로 달리는 차 안에서 이기영 대표가 알폰스 무하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지만 이름도 생소하고 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 그런지 창밖의 풍경에 더 눈길이 갔다.

약 2시간 정도 달려서 온 모라비아 크룸로프의 뮤지엄 캄파,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는 건물로 들어서는 순간 와우!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전시회장 벽면 전체에는 대형 그림이 쭉 걸려 있는 게 아닌가.

ⓒ 웅상뉴스(웅상신문)
예술가가 사랑하는 뭔가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알폰스 무하의 경우는 체코 민족의 뿌리를 담은 슬라브 대서사시였다. 체코의 국민이 자긍심을 갖는 것, 슬라브 민족들이 공동 유대감과 이상적 평화를 염원하면서 약 18년 동안 그린 슬라브 민족의 문명과 역사였다. 거대한 20~50㎡ 캔버스에 그린 슬라브 서사시는 원래의 고향에서 살고 있던 슬라브족의 조상들에서부터 종교 개혁자인 얀 후스, 얀 아모스 코메니우스, 슬라브 민족의 신성화 등이었고 역사적 맥락에 따라 배열되어 있었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조국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알폰스 무하는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인생 후반기인 1899년 아이디어를 결성했다. 1900년 파리 전시회를 위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정부에서 의뢰해 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관의 내부를 설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널리 발칸 반도를 여행하면서 슬라브 인의 역사, 관습 등을 관찰했다. 이러한 경험 끝에 나온 것이 바로 모든 슬라브 민족의 서사시였다.

슬라브 서사시의 투자자는 알폰스 무하가 찾아 나섰다. 1904년에서 1909년 동안 약 5번에 걸쳐 미국을 방문했고 1909년 시카고의 부유한 사업가인 찰스 리처드 크레인에게서 재정지원을 받기로 했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고국으로 돌아온 알폰스 무하는 1911년~1926년 동안 서부 보헤미아 즈비로그 성에 있는 크리스털로 된 스튜디오에서 그림에 집중했다. 그림은 모두 20개의 대형 캔버스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체코 역사의 에피소드 10개, 다른 슬라브 지방의 역사적 에피소드 10개로 구성되었다.

알폰스 무하는 슬라브 공동의 유대와 평화를 향한 마음으로 그린 그림은 전부를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10주년인 1928년 조국에 기증했다.

#아르누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했던 유럽 예술사조. 19세기 아카데미 예술의 반작용으로 자연물, 특히 꽃이나 식물 덩굴에서 영감을 받은 장식적인 곡선을 많이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템페라(달걀노른자, 벌꿀 등을 접합체로 쓴 투명 그림물감)기법을 차용한 것이 특징이다. 무하는 순수한 달걀 템페라가 아닌 달걀노른자에 빻은 안료와 물, 기름 등을 적절히 섞어 사용.
(2023년 4월 13일)
ⓒ 웅상뉴스(웅상신문)
ⓒ 웅상뉴스(웅상신문)
ⓒ 웅상뉴스(웅상신문)
ⓒ 웅상뉴스(웅상신문)
ⓒ 웅상뉴스(웅상신문)


저작권자 웅상뉴스(웅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