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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유럽 인문학여행7] 세계 최고의 부다페스트 세체니 온천-따뜻한 온천에서 느긋하게 즐기기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4.09.22 10:54 수정 2024.09.22 10:54

김서련 소설가

ⓒ 웅상뉴스(웅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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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25분, 부다페스트 호텔 로비바에는 밝고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고여 있는 불빛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든다. 며칠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는데. 내일이면 간다고 생각하자 아쉬운 마음이 밀려온다. 그간 정이 들었나. 부다페스트 여행 2일 차인 어제는 각자 취향대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세체니 온천과 부다페스트 미술관, 일행은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 등 명소를 둘러보았다.
 
좀 고민은 했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냐 아니면 세체니 온천과 부다페스트 미술관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세체니 온천과 미술관을 택했다. 평소에 온천을 좋아하는 나는 여기까지 와서 그 유명한 세체니 온천에 가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게다가 에게르에서 가지 못한 파묵칼레 온천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에게르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택시를 타고 간, 10km로 떨어진 소돔 온천인 파묵칼레 온천은 경사면을 따라 온천수가 흘러내리고 뿌연 우윳빛 수증기가 공중에 떠다녔다.
 
이기영 대표를 비롯한 안, 한 작가와 나는 원래 현지인이 주로 즐겼다는 온천 호수의 살라리스 리조트까지 슬슬 걸어갔다. 산 밑에는 거대한 리조트를 지으면서 온천호수를 사용할 수 없게 된 현지인을 위
해 만든 작은 야외 온천이 몇 개 보였고 몇몇 사람들이 느긋하게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작은 통나무집과 긴 의자 등 주변에는 햇빛이 고여 있는 게 무척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하룻밤 자면서 온천욕을 하면 딱 좋겠어.
나는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쌀쌀한 기온에 온천을 할 수 있을까, 이기영 대표의 말대로 수영복을 챙기긴 했지만 반신반의하면서 산길을 걸어가는 중이었다. 대기 중인 택시기사를 내보내고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택시에 두고 온 수영복을 떠올렸다.  
경사진 면의 파묵칼레!
탄산칼슘이 과포화된 따뜻한 지하수가 단층의 고지대에서 흘러나온 것이 이 지형의 발생 원인, 수천 년 동안 산의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린 물에 포함되어 있던 석회 성분이 지표면에 퇴적되어 부드러운 회색 석회질로 뒤덮인 것이라는 파묵칼레.
 
고대 로마 시대 유적 위에 조성된 노천온천의 바닥에는 무너진 대리석 기둥이 그대로 있다던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도 온천을 즐겼다는 ‘엔티크 풀’이 바로 저곳인가? 나는 먼 눈빛으로 야외 온천을 보면서 가늠했다.
 
가까이 갈수록 수증기가 뭉글뭉글 공중으로 흩어지는 풍경이 뚜렷해지고 유황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신선했다. 한두 시간이라도 온천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 주변 풍경을 둘러보고 사진만 찍고 이런 데서 며칠 자면서 온천을 즐기는 날이 올까 가늠하면서 털레털레 산길을 내려왔다. 로마 황제들이 망중한을 즐겼던 파묵칼레에서 몸을 못 담근 것이 내내 아쉬웠다.
 
세체니 온천은 사진만 봐도 심장이 뛰었다. 1913년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고풍스럽고 엄청 웅장했다. 74도의 뜨거운 온천수는 어떤 느낌일까. 유럽 온천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세체니 온천에서 느긋하게 즐기는 내 모습을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리하여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세제니 온천에 도착했다. 의외로 한적했다. 한두 명 정도 보였다. 세체니를 잠깐 둘러본 한 작가가 부다왕궁으로 떠난 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수영장처럼 널찍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야외 온천은 지하 971m에서 끌어올린, 24~38도의 서로 다른 온도의 온천수가 있는 3개 탕으로 되어 있었다. 3개 탕에서 놀다가 지겨워지면 실내에 들어가서 물 온도가 다른 탕마다 들어갔다. 탕마다 점점 늘어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진하게 애정행각을 하는 커플도 더러 있었다. 탕에 있는 것이 지겨워지면 다시 야외 온천탕에서 놀았다. 남녀노소 혼욕인 온천탕에서 사람들 구경만 해도 재미가 쏠쏠했다. 젊은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은 온천욕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즐기러 온 것 같았다. 탕에서 노는 것이 지겨워지면 나무 밑 비치베드에서 잠도 자고 커피도 마시면서 편하게 휴식을 취했다. 며칠간의 여행 노독이 저절로 풀렸다.

헝가리 국토의 삼분의 이가 온천으로 개발할 수 있고 온천이 1000여 개나 된다는 것도 부다페스트에 와서 알았다. 1873년 3개의 도시가 합쳐진, 역사적 전통이 남아 있는 건물이 즐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도시 중심의 다뉴브강을 경계로 동서로 나누어졌고 부다와 페스트 지구는 ‘세체니’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대체 헝가리 온천은 언제부터 개발된 것일까. 역사는 2000년 전 목욕문화가 유행했던 고대 로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인이 헝가리 영토에 들어오면서 목욕탕을 만들기 시작했고, 16~17세기에 걸쳐 중부 유럽을 지배했던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로마 목욕탕이 ‘터키탕’으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온천탕으로 거듭나게 됐다.
 
오후 늦게 세체니 온천을 나서면서 본 풍경은 아침과 완전히 달랐다. 건물 입구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청춘들도 많이 보였다. 그들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서 데이트를 즐기는 것일까. 온천탕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데이트 코스처럼 보였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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