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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영주 칼럼

국보중의 국보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4.07.04 11:28 수정 2024.07.05 11:28

원암 장 영 주
국학원 상임고문
웅상신문 칼럼위원

ⓒ 웅상뉴스(웅상신문)
7월이 되면 싱그러운 향취의 연꽃이 둥두렷이 피어난다. 녹색 넓은 연잎이 너울거리는 사이사이로 등불 같은 분홍색, 흰색 꽃의 자태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롭다. 비라도 올라치면 넉넉한 잎 위의 구슬 같은 빗방울 또한 번잡한 마음을 달래주고 향불처럼 사특함을 스러지게 한다. 연잎은 수렴제, 지혈제이고 아이들의 오줌싸개 치료에 이용된다. 연근은 비타민과 미네랄의 함량이 높아 생채, 조림 등 요리에도 많이 쓰이거니와 뿌리줄기와 열매는 부인병 등의 약용으로도 활용된다. 연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단 한 방울도 오수에 물들지 않는 청결한 식물이다. 넘쳐도 사치스럽지 않고 낮아도 비루하지도 않다. 생명력도 강하여 2천 년 묵은 씨앗에서 꽃망울이 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연꽃은 특유의 순수하고 아름답고도 강한 생명력으로 동, 서양 종교적인 가르침의 소재로 많이 회자된다. 삶은 생노병사의 진흙 밭에서 뒹구는 허망한 그림자일 뿐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진흙 한 가운데에서도 오히려 청정함으로 빛나는 연꽃이야말로 진정한 해탈의 모습이 아닐까. 단양 구인사의 상월원각대조사의 법어도 그런 가르침이다. ‘본 모습은 같음이 없고, 진리는 태어남이 없고, 존재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實相無相 妙法無生 蓮華無染). 기독교의 ‘성모무염시태(聖母無染始胎)론‘ 역시 청정한 몸으로 성령잉태라는 종교적 비유이다.

자연속의 연꽃이 더없이 아름답지만 스러지는 한갓 찰라의 뭇 생명일 뿐이다. 그 청정한 향내음을 천년, 만년 함께 하고픈 절절한 소망이 빚어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연꽃이 있다. 국보 제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작품 중에 가장 위대한 예술품으로 마치 황금빛 연꽃이 피기 직전의 모습과 같다. 얼마나 정교하고 철학적이고도 아름다운지 ‘국보 중의 국보’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필설로 이루 다할 수 없이 귀한 이 국보는 7세기 초 백제의 유물로 높이 64cm, 지름 20cm, 무게 11.85㎏에 달하는 대작이다. 금동제 박산향로(朴山香爐)로 박산이란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동해의 전설적인 산이다. 대향로는 힘차고 아름다운 용트림의 향로받침, 연꽃으로 꾸며진 향로몸체, 산악이 솟아있는 향로뚜껑, 봉황장식의 뚜껑손잡이 등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이 닿는 아랫부분은 발가락 네 개의 황룡이 연꽃을 물고 곧장 승천하려는 듯이 꿈틀거리고 있다. 몸체의 구름문양 아래에는 연꽃 연못이 있고, 뚜껑에는 삼신산으로 추정되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산속에는 기마사냥꾼, 신선들,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뭇 생명들이 조화로운 이상향을 이루어 함께 살고 있다. 구비마다 도를 닦는 신선들, 풍류도를 연마하고 무예를 닦는 사람들과 곳곳에 폭포, 나무, 불꽃 무늬 등의 자연경관이 어울려있다. 정상에는 봉황이 여의주를 머금고 날개를 펴 비상을 꿈꾸고 있다. 수중의 용, 지상의 인간사, 천상을 향하는 봉황의 조합이 영락없는 우리의 천지인합일의 철학이다. 진선미가 하나 된 밝은 숨결이 대향로의 구석구석 알알이 비추이고 있다. 이 생생한 모든 것이 단지 쇠로 만들어진 것이다.

서기 660년 7월 18일 비보가 부여 사비왕궁으로 날라들었다.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의 결사대가 열흘 만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전멸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뒤따르듯이 거센 불길에 궁성은 타오르고, 피아의 함성과 비명이 잡힐 듯 들려오고, 왕족들과 대신, 궁녀들은 우왕좌왕 몰려 사비궁을 탈출한다. 수많은 여염의 아녀자들은 머리를 풀고 맨발로 강가의 절벽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우람했던 정림사 석탑도 맹렬한 불길에 그을리고 그윽한 향기가 밴 웅장한 건물도 속절없이 무너진다.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그 한가운데에서 대향로의 귀함을 너무나 잘 아는 누군가가 급히 둘둘 말아 던지듯이 감춘 것이 아닐까? 혹시 대향로를 매일매일 애지중지 수습하던 신궁의 신녀가 아닐까? 정림사지 5층 석탑 탑신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했다’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1천3백 여 년 전 백제의 수도 부여 능산리 절 안팎은 온통 영욕의 무상함을 전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5년 주차장을 건설하다가 발견된다. 대향로는 돌무더기 속에 네 부분이 분리되었으나 온전하게 발견되었다. 기와, 토기 조각과 함께 향로를 감쌌던 것으로 추정되는 섬유조각들도 발굴되었다. 대향로가 발견된 능산리의 절 일대는 백제왕가의 전용 절터였다. 학계는 백제 금동대향로가 단순한 향로가 아니라 백제왕실 의식이나 제사용으로 사용된 신물로 추정하고 있다. 부여 능산리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석조사리감에서 "창왕(위덕왕) 13년(567년)에 정해공주가 이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여러모로 백제와 부여의 학술적인 재발견이 시급하다.

민족과 인류의 보물중의 보물인 백제금동대향로의 출현으로 우리겨레의 문화, 예술적 역량이 가늠 할 수 없이 아득히 높은 경지임이 저절로 알려지고 있다. 대향로의 봉황이 품은 여의주의 원력으로 한민족의 밝고 힘찬 웅비가 이 시기에 맞추어 결단코 나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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