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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산책

길을 떠나다(28) 몽골여행6/유목민 게르에 가다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3.05.25 14:20 수정 2023.05.26 14:20

강명숙 시인 글/사진

으문 고비와 조건이 흡사한 엘승 타사르헤
터우(TUV) 아이막의 후스테인 국립공원 평원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본 별과 은하의 강
초원 가운데 체기네 집 하얀 게르,
말 배설물 말린 것을 연료로 하여 끓여주신 수태차
우리나라 칼국수와 비슷한 저녁 식사 ’고릴테슐‘

ⓒ 웅상뉴스(웅상신문)
한반도의 일곱 배 넓이를 가졌다는 몽골은 열여덟 개의 행정구역 아이막(AIMAG/우리나라의 道)이 있다. 그중 사막(GOBI)을 가진 아이막이 넷이다. 고비 알타이, 돈드고비, 더르너 고비, 으문 고비(고비 사막)이다. 기상악화로 으문 고비를 가지 못한 일행은 으문 고비와 조건이 흡사한 엘승 타사르헤(Elsen Tasarhai)를 찾아 아쉬움을 달랬다. 그곳에서 사막이 키우고 있는 에델바이스를 비롯한 꽃들을 보았다. 자연의 신비스러움과 경이로움 앞에 인간은 참으로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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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울란바토르를 둘러싸고 있는 터우(TUV) 아이막의 후스테인 국립공원 평원에서 하룻 밤을 보냈다. 수많은 별과 은하의 강은 밤새 우리 이마 위에서 반짝이며 흘렀다. 감동에 취해 환상의 밤을 보낸 일행은, 이동을 위해 운전을 책임지고 있는 절러치(운전사)의 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체기’라는 이름을 가진 절러치의 집 게르는 불강(BULGAN)아이막에 있다 하였다. 절러치 ‘체기’는 딸아이가 가르치는 학생이기도 했다. 이방인의 눈에는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초록의 들판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평원이었다. 길도 없는 그곳에서 체기는 정확히 집을 찾아냈다. 몽골인의 시력 범위는 4km까지 미친다더니 우리는 눈 씻고 봐도 보이지 않던 집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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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푸른색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초원 가운데 체기네 집 하얀 게르가 있었다. 길들지 않은 초원의 야생마처럼, 거침없는 초원의 바람처럼 떠도는 유목의 생활에서 현대 문명의 혜택은 전혀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게르 가까이 가니 태양열판이 세워져 있고 그것으로 배터리를 충전해 전기를 쓴다고 했다. 그리고 엄청나게 커다란 위성안테나로 TV도 볼 수 있었다.

어설픈 몽골어 발음으로 ‘센베노(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찾아든 일행을 체기 부모님과 형제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처음 들어간 게르 안의 풍경은 우리 옛 시골집의 따스하면서 남루했던 풍경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게르의 원형 그대로 가장자리에 놓인 세 개의 침대만 낯을 가렸다. 프라이빗한 사고로는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한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양한 삶의 형태에 기준이 있고 표준이 있겠는가. 침대와 침대 사이 중심이 되는 자리에
우리 반닫이를 닮은 가구와 경대가 자리하고 있고, 마치 우리 시골집 할머니의 방처럼 가족들의 사진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게르의 출입문은 남쪽으로 낸다고 하였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이 주방, 침대, 가구 순이다. 오른쪽 공간은 주인들의 공간이므로 손님이 오른쪽으로 가는 건 실례라고 한다. 손님으로 방문한 사람은 반드시 왼쪽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체기 어머님이 말 배설물 말린 것을 연료로 하여 끓여주신 수태차를 몇 잔을 마셨다. 수태차는 우유가 들어간 차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음식은 이 수태차를 곁들여 먹는다고 했다. 그릇이 비기만 하면 체기 어머니가 수태차를 부어 주셨다. 당신의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극진히 대하시는 모습이 마치 오래 전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체기 어머니가 타라크(몽골 야쿠르트), 으름(유지방을 말랑하게 굳힌 것), 아롤(치즈), 버우(빵과 과자의 중간)를 자꾸 먹으라 권하시는 통에 거절하지 못하고 배가 불러 부담이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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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 후 이어진 저녁 식사 ’고릴테슐‘이라고 했다. 말린 쇠고기를 넣어 낸 육수에 칼국수를 썰어 끓인 음식인데 우리나라 칼국수랑 비슷했다. 쇠고기가 너무 많아 육류를 즐기지 않는 나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거북스럽지는 않았다. 우리가 흔히들 먹는 샤부샤부 칼국수의 종주국이 몽골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오려면 아직 몇 시간을 더 있어야 했고 식후 운동을 겸해 초원걷기에 나섰다. 들판을 거닐다 보니 발밑이 온통 야생부추다. 아예 부추밭이었다. 몽골 들판에는 약초가 지천이라 들었지만, 부추도 지천이었다. 수확한 부추로 다음날 아침 비빔밥해 먹자고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온 체기네 집 게르 옆에서 체기 어머니가 소젖을 짜고 계셨다. 아마 내일 아침 오늘 짠 젖으로 수태차를 끓여 주시겠지.

여기서 나의 말(言)은 풀 한 포기 흔들지 못한다/ 헤매는 길이 어디쯤인지 나는 모른다/ 쑥 향기 속에 잠시 몸을 눕힐 수 있을 뿐/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풀을 찾아 구름을 넘는 양 떼를 따라갈 뿐이다// 이제 너를 돌아보지 마라/ 다비(茶毘)/ 다비/ 돌아갈 곳을 찾던 슬픈 마음이/ 불꽃 한 점 없이 저를 사르고/ 까마득한 허공의 새들을 부른다
- 박영근 詩<몽골 초원에서 3> 부분
↑↑ 강명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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