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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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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의 문화제 중에 손꼽자면 우불신사(于弗神祠)와 우불산성(于弗山城)을 댈 수가 있다.
지난 3월 20일 웅상 용당 당촌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우불신사에서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가 있었다.
이날 우불신사보존회의 지역유림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태민안과 지역의 안녕을 기원하는 우불신사 제향을 봉행했다.
우불신사 향례는 국가적 제례를 지내는 24소사(小祠) 중 하나로 신라시대부터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번영을 기원하며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 하정일(下丁日)에 제사를 지내왔는데 지금은 음력 8월에만 제사를 지내는 웅상에 최대 문화유산이다.
우불산신사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불산의 옛 명칭은 우화(于火)이며 24소사(小祀)중 하나로 신라시대부터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해마다 음력 이월에 제의를 올렸다고 하며,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특히 기우제의 효험이 있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소사에 산악신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 이 시대에도 국가에서 관리를 보내 제를 지내게 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러다 태종실록 권1 태종 14년 8월 신유조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신라시대와 같이 우불산신제가 소사로 받들어졌고 국가에서 매년 봄·가을에 향축(香祝)을 내려 제사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큰 제향이라면 6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불신사 봉행이다.
이처럼 소중한 문화유산이 웅상에 있다는 것은 널리 자랑할 만한 것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번의 보수정비를 해왔기 때문에 그런지 건물 측면과 내부에 있었던 고전벽화가 사라져 아쉬움을 주지만 나름대로 전통을 유지해오는데 웅상의 사람들의 노력이 지속되어 왔다.
우불신사가 있는 우불산에는 2000여 년 전 우시산국(于尸山國)의 산성에 허물어진 성곽이 묵묵히 침묵하고 있는,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한 모습이다.
우시산국(于尸山國)의 위치에 대해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서생면, 온양읍에 있던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이라는 문헌에 표기하고 있다. 이를 기념하고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매년 6월이면 웅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웅촌면에서 '우시산국 축제'가 열린다. 이날 울주군 웅촌면 주민들은 물론,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알찬 문화행사가 열린다. 제향은 웅상에서, 축제는 웅촌에서 지내고 있다.
우시산국의 문화유산이 서로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하나로 묶어야 하는 행사를 웅촌과 웅상이 별도로 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마치 우시산국이 둘로 나뉘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웅상지역이 1906년 이전까지는 울산군 소속이었다. 웅상 바로 위 울주군 웅촌면의 옛 이름이 웅하면이었고 웅상과 위아래 한 세트였다. 그러다 1906년 월경지/땅거스러미 정리를 하면서 이곳이 울산의 땅거스러미이고 양산과 더 가깝다고 하여 양산으로 편입되었다. 조선통감부가 1905년에 설치되었으니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파괴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고 문헌에서는 전하고 있다. 하나였던 행정구역이 둘로 나눠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이 두 곳은 맥이 끊기면서 운 또한 다했다는 풍수지리적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이번 지난 21일 웅상체육문화센터에서 웅상과 웅촌을 흐르는 회야강에 문화와 역사를 살리는 대대적인 정책의 내용으로 나동연 양산시장은 신춘기자회견 및 주민설명회를 열고 회야강과 연계한 웅상지역 종합정비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맞물려 회야강의 발전은 거듭될 것이고 향후 많은 사람이 찾아올 것이다. 역사적 가치 또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회야강에 연계된 우불산과 우불신사, 용당역사로 이어지는 이 프로젝트에 주민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우시산국으로부터 이어 내려온 우불신사 우불산성의 문화제를 두고 웅촌면은 행정구역이 다르다고 해서 외면한 채 웅상사람들만 우불신사 제향 봉행을 지내고 웅촌사람들은 우시산국축제라는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조상의 문화유산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역의 유구한 문화유산을 지금이라도 행정구역이 다른 당국에서 나서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하나로 묶어야 한다. 이는 조상의 명령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