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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산책

길을 떠나다(25) / 몽골여행-3

김경희 기자 입력 2023.02.21 09:08 수정 2023.02.21 09:08

강명숙 시인

↑↑ 초원의 집
ⓒ 웅상뉴스(웅상신문)
세기의 태풍을 몰고 와 전 세계를 혼돈의 도가니로 빠지게 했던 COVID-19가 몇 번의 이름과 옷을 갈아입고도 아직 그 꼬리의 흔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펜데믹에서 벗어나 자유를 준비하고 있다. 불문율처럼 얼굴에 붙이고 다니던 마스크를 장소에 따라 굳이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이 온 것이다. 해방감에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해외여행을 즐기려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통상 열흘을 기다려야 한단다. 코로나가 만연했을 즈음 국내 항공기 여객 운임이 부산 – 김포 1만 원대가 있었다. 최근 강화도 여행을 하려고 항공권 가격을 확인하니 할인석도 요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만 원대이다. 여행을 즐기려는 이들이 많아졌음이다. 시쳇말로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 떨리면 여행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만다.’라고 한다. 그렇다 두 다리 건강할 때 어디로든 떠나 볼 일이다.

다시 몽골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자. 다르항 시내에서 내려 딸아이의 숙소인 아파트까지 걸어갈 때쯤의 시각이 저녁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아득히 가물거리는 산 너머로 해넘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둔덕 길에는 토끼 크기의 몸집을 가진 몽골 들쥐 ‘타르박’이 땅속에서 올라와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아예 밖으로 나와 다니기도 했다. 처음 보는 동물이라 궁금증을 가졌다가 ‘들쥐’라는 말에 기겁했다.

러시아풍으로 지어진 아파트 딸아이 숙소에는 안전을 위해 자그마치 세 개의 문을 거치도록 해두었다, 학교 측에서 그렇게 해주었다 한다. 몽골의 서민들은 더러 아파트 한 공간에 방마다 다른 가족의 구성원들이 거주하기도 한다고 했다. 딸아이와 같은 층에 사는 집에는 방 세 개에 각각 다른 가족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 주방 욕실을 겸한 화장실은 공동사용이라 하였다.

 초원에서 생활하던 유목민들이 무작정 도시를 찾아와 거주지를 찾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라 한다. 초원에서 하늘과 바람을 한껏 느끼며 살던 자연인들이 너무 먼 거리의 희망을 바라보며 작은 방에 갇혀 독한 보드카에 취해 보내는 날들이 많다고 한다. 공산품 하나조차 생산하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의 한 면을 보고 들으며 안타까웠다.

새벽 다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창밖이 훤하다.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훨씬 높아 북반구가 가까운 나라 몽골의 아침 해가 떠오른 것이다. 두꺼운 커튼을 젖히니 해가 오른 풍경이 우리나라 아침 8시쯤 된 듯했다. 일상이 시작되는 시간까지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일어났더니 거짓말 조금 보태 해가 중천이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딸아이의 파견 현장인 대학을 찾았다. 

↑↑ 해넘이
ⓒ 웅상뉴스(웅상신문)
오가는 길에서 만난 몽골 아이들이 빨갛게 익은 볼에 해맑은 미소가 예쁘다. 역시 러시아풍으로 지어진 대학 건물은 규모가 우리나라 시골의 초등학교만 하다. 딸아이의 강의실과 주변을 돌아보고 다르항 시내로 나갔다. 1992년 소련 멸망과 함께 몽골도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지만, 사회주의 문물이 아직 남아있어 다르항 시내 백화점이 국영백화점이다. 상품이 주로 낙타의 털을 가공해 만든 캐시미어 제품이다. 

이제 여행 시작이라 쇼핑은 다음으로 미루고 점심은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빵집을 찾아 갓 구워낸 크로아상을 커피와 함께 먹었다. 커피를 마시며 딸아이가 조금 전 찾았던 국영백화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두어 달 전 백화점에 들렀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다 한다. 한 사람이 곁을 치면서 지나가는 그 순간 느낌이 이상해 보니 가방 속 지갑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고 한다. 

방금 지나간 그 남성을 향해 뛰어가 손목을 잡으며 ‘내가 봤다. 지갑을 달라.’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갑을 내놓았다 한다. 그 자리에서 잠시 든 생각이 ‘똑같은 상황이 만약 다른 나라에서 있었다면 이리 쉽게 돌려받을 수 있었을까?’ 였다 한다. 1여 년 남짓 겪어본 몽골인들이 참 순수하단다. 물질 만능의 현대 생활에 찌든 우리를 잠시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세월이 제법 흐른 여행기를 그때 적어 둔 짧은 기록을 보고 회상하며 쓰다 보니
충실하지 못한 것 같아 염려가 앞서고 있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때/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갈 때/ 달려가도 멈춰서도 앞이 안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충분한 존재감이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함께 가도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둘이 손잡고 오라// 낯선 길에서 기다려온 또 다른 나를 만나/ 돌아올 땐 둘이서 손잡고 오라
박노해 시 [여행은 혼자 떠나라] 전문
↑↑ 강명숙 시인
ⓒ 웅상뉴스(웅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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