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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동식 칼럼

오페라의 거장들을 키운 마이어와 메렐리.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2.05.04 20:05 수정 2022.05.04 08:05

하동식 원장
변화혁신 아카데미

ⓒ 웅상뉴스(웅상신문)
헨델이 독일 음악가로 베니스에서 각광을 받은 지 1세기 후에 또 다른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요한 지몬 마이어(1763-1845)가 베르가모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의 음악 감독인 카롤로로부터 작곡 지도를 사사받은 후 베네치아에서 오페라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마이어는 지오반니 파이지엘로의 이탈리아 전통 오페라와 조아키노 로시니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벨칸토 오페라 사이에서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면서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무엇보다 독일의 화성악, 관현악 작곡법을 이탈리아 음악에 적용하고 도입하였다.

카롤로의 후임으로 음악 감독 자리를 맡았지만 자신보다 29살이 적은 로시니의 재능을 알아보고 화음의 전개 방법이라든가 극적 효과를 올리기 위한 크레센도를 사용하는 방법 등을 훈련시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키우면서 로시니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혜성같이 나타난 로시니로 인해 불행하게도 마이어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잊히고 말았다. 일선에서 물러난 마이어는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베르가모의 무대에 올렸으며, 하이든을 소개하는 글을 음악 잡지에 실어 처음으로 이탈리아에 하이든을 알리기도 했다.

새로운 음악회를 기획하고, 음악 교육과 자선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특히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음악학교와 은퇴한 음악가들, 남편과 사별한 아내나 고아들을 도울 수 있는 기관을 설립했다.

어느 날 마이어가 개교한 음악학교에 9살의 한 소년이 찾아왔는데 음악 교육이라고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의 어린이 성가대원의 이력밖에 없는 아이였다. 음악학교를 다니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소년의 잠재능력을 발견한 마이어는 자신의 비용으로 볼로냐의 유명한 대위법 선생이었던 마테이 신부가 지도하는 음악학교로 유학을 보냈는데 이 소년이 이후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가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였다.

볼로냐의 음악학교에서 도니제티는 이후의 음악 활동에 엄청난 힘이 되어주는 바르톨로메오 메렐리(1794-1879)라는 친구를 운명처럼 만났다.
이후 메렐리는 밀라노의 공연기획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이 사업에 비상한 자질이 있음을 알았고 유럽의 주요 음악도시인 빈, 런던, 베를린에 공연기획 지부를 설립하며, 밀라노 스칼라 극장의 오페라 공연 기획도 전담하게 되면서 도니제티에게 오페라 무대 기회를 주었다.

그 당시 실패와 고난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오페라 작곡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음악사에 빛난 작곡가로 키웠다.
일생 동안 약 70편의 오페라와 600편의 종교음악 작품을 남겼으며, 재능이 있는 인재를 발견하고 육성하여 도니제티와 주세페 베르디와 같은 인재를 음악사에 남겼다.

도니제티를 볼로냐 음악학교에 유학을 보냈기에 메렐리라는 일생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밀라노 스칼라 극장이라는 최고의 오페라 극장에서 음악사에 남는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가 될 수 있었다.
음악가로서 사회참여를 행동으로 실천하며 주위의 음악가에게 세심한 관찰과 관심으로 많은 인재를 육성한 마이어와 메렐리의 인재정책을 보면서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서도 인재가 없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숨겨진 훌륭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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