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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찬란한 빛,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2.04.10 09:50 수정 2022.04.10 09:50

원암 장 영 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웅상신문 칼럼위원

ⓒ 웅상뉴스(웅상신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양국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의 자유와 존엄을 짓밟던 러시아 정부의 패배가 분명해졌다. 이대로라면 푸틴의 러시아는 쪼개진 채 수 십 년간 도탄에 빠질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모든 것을 잃었지만 용감하고 지혜로운 대통령과 정부의 활약으로 목숨보다 귀한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정부란 국민의 생존과 존엄에 가장 중요한 심장이며 뇌수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뿌리는 어디서 왔을까?

1919년 3월 1일 기미년 삼일 만세 운동으로 한반도는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같은 큰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강렬한 자주독립을 향한 민족의 단합된 기운은 '자유와 독립'이라는 ‘희망의 빛’을 지구촌에 비추었다. 당시 세계의 3/4에 달하는 인류가 서구 열강과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노예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세계를 향하여 자유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온몸으로 전달한 셈이다. 기미년 만세운동은 중국의 손문, 베트남의 호치민, 아프리카와 이집트까지 자유를 향한 의지를 떨치도록 자극하였다. 주춤했던 인도의 간디의 ‘무저항주의 운동‘도 다시 불붙었다. 40일 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잇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의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되었다. 1919년 4월 11일, 상해의 독립 운동가들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대의원 30명이 참가하여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다. 이어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드디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오백년간 왕이 나라의 주인인 ‘대한제국’에서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 체제로 홀연히 바꾸었다. 임시정부의 지도이념은 조소앙(1887~1958)의 ‘삼균주의(三均主義)’였다.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통해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균등생활을 이루어 세계 일가를 추구한다는 동등한 자격으로 이룬 홍익의 정치철학이다.
첫째,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고,
둘째,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경제의 혜택을 보장 받고,
셋째,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정치참여의 기회를 보장받는다.
이 철학은 후일 대한민국헌법에도 반영되어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계승된다. 자유민주주의를 신장하는 정부시책이 되어 독립과 자유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며 차츰 대한민국 역사를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국토를 잃었음에도 다가올 독립을 쟁취한 나라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선택한 것은 임정요인들께서 하나같이 애국자요 선각자들이셨기에 가능했다. 그분들의 혈관 속 DNA에 아로새겨진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이 얼굴을 바꾸어 나타난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 모두가 하늘이 보우하신 기적의 개혁이었음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은 깊이 감사해야 한다.

각료로는 임시의정원 의장에 이동녕, 국무총리 이승만(초대 대통령),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김규식,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형,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문창범 등이 임명된다. 임시정부는 1945년 8·15광복까지 남의 땅을 헤매며 이루 말 할 수 없는 가시밭길의 투쟁을 이어간다. 상하이(1919년), 항저우(1932년), 전장(1935년), 장사(1937년)· 광저우(1938년), 류저우(1938년), 치장(1939년), 충칭(1940년) 등지로 쫒기고 후퇴하는 장정의 연속이었다. 짐이랄 것 없는 짐을 싸서 트럭으로, 배로, 기차로, 남부여대로 걸어서 청사를 옮겨가면서 독립의 중추인 ‘정부’를 끈질기고 치열하게 보존하였다.

오래전에 상해청사로 부터 마지막 충칭청사까지 고난의 노정을 임정의 마지막 요인들과 함께 답사한 적이 있다. 노 애국자들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그 길은 너무나 길고 남루하였다. 그러나 독립 의지는 실로 강렬하여 십 억 명의 중국인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윤봉길, 이봉창 등 몇 명의 한국인들만으로도 담대하게 이루어 갔다. 이어 ‘임시정부의 문지기’라도 좋겠다고 백범 김구도 합류하여 일생을 나라의 독립에 온 몸을 던진다. 김구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제시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 라고 하여 독립의 모태인 상해임시정부가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적, 사상적 기반이 되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한민족의 화백제도, 접화군생,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숭고한 철학적 가치가 흠뻑 녹아들어 있다. 우리가 따르고 존숭하기에 따라 그 가치는 마침애 지구를 살리고 인류의 진화를 약속하는 ‘찬란한 생명의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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