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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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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와 남원 그리고 변산반도를 거쳐 2박 3일 여행 일정의 마지막 날이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니 지금까지 북쪽으로 달리던 길을 이제는 그 방향을 남쪽으로 향하여 달린다.
장태산 휴양림과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 마지막 일정은 충북 영동이다. 충북 영동에는 `노래하는 화가`로 잘 알려진 아우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 `예술창고`가 있다. `예술창고`에 가기 전, 몇 해 전 도리뱅뱅이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 금강 변의 한 식당에서 점심으로 도리뱅뱅이와 어죽을 먹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생겨 도리뱅뱅이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도 기울였다.
전통과 예향의 고장으로 불리는 영동은 이미 몇 차례 찾았던 곳이라 친근한 느낌이다. 월류봉의 비경에 반해 `달도 머물렀다 간다`는 한천팔경(寒泉八景)의 아름다운 월류봉(月留峰)은 산행을 하느라 찾은 적이 두어 번 있다. 월류봉 단애 아래로 흐르는 조강천(早江川)과 조강천 변에 우뚝 서서 이마를 높이 드리운 월류정(月留亭)을 마주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달의 마음을 닮아 그곳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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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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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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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되는 조선조의 천재 음악가 ‘난계(蘭溪)박연(朴堧)’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난계 박연 선생을 기려 세운 ‘난계 국악박물관’에는 다양하고 신기한 우리 국악의 악기와 더불어 국악에 대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큰 북 천고(天鼓)를 볼 수 있다. 소 40여 마리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천고를 세 번 울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으니 행여 영동 여행길이 있다면 난계 국악박물관의 천고도 한 번 울려 볼 일이다.
그리고 영동에는 한국전쟁 6.25의 아픈 이야기를 오롯이 품고 있는 마을이 있다. ‘노근리’ 마을이다. 미군이 주변 마을 사람들과 피난민 300여 명을 경부선 철로 쌍굴다리에 모이게 하고는 사살한 사건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이다. 묻혀 있던 이 사건이 밝혀지고 노근리는 지금 평화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쌍굴다리 주변에는 당시의 포탄,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과 탄식을 쏟게 한다. 그곳을 찾은 날 억울한 죽임을 당한 넋이었을까 하얀 나비 수십 마리가 쌍굴다리 주변을 날고 있었다.
이제 무궁화 열차도 경제 논리를 앞세워 축소 운행이나 폐지를 생각하는가 보다. 아련한 시골역의 정취도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닌지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커진다. 영동에는 간이역 같은 황간역이 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열차 이용객이 적어 역사(驛舍)의 빈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갤러리’ 와 ‘마실 카페’ 가 있고 주변에서는 쉽게 전국 유명 시인들의 詩와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도 있다. 영동을 찾는 여행객들도 한 번쯤 들러 보고 싶게 하는 매력을 가진 ‘황간역’이다.
여행의 마지막은 영동의 포도로 빚은 와인을 사기 위해 기업 형 와이너리가 아닌, 농가(農家) 와이너리로 향했다. 와인 마니아는 아니지만 영동을 오면 꼭 찾게 되는 곳이 한 농가 와이너리다. 직접 농사를 지은 포도로 술을 빚고 숙성 과정을 거친 와인들을 시음하는 맛과 멋을 누리고 와인에 익어 발그레해진 얼굴로 와이너리를 나서는 양손엔 포장된 와인 몇 병이 들려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뉘엿뉘엿 해 떨어지자 구름 드리운 하늘이 붉게 물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붉게 익어서 간다. 2박 3일의 시간이 익었고 함께한 사람들 사이가 익었고 가슴에 담아 온 추억도 익어 달큼해진 여름날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떠나면 만난다// 그것이 무엇이건/ 떠나면 만나게 된다// 잔뜩 찌푸린 날씨이거나/ 속잎을 열고 나오는 새벽 파도이거나/ 내가 있건 없건 스쳐갈/ 스카프 두른 바람이거나/ 모래톱에 떠밀려온 조개껍질이거나/ 조개껍질처럼 뽀얀 낱말이거나/ 아직은 만나지 못한 무언가를/ 떠나면 만난다// 섬 마을을 찾아가는 뱃고동 소리이거나/ 흘러간 유행가 가락이거나/ 여가수의 목에 달라붙은/ 애절한 슬픔이거나/ 사각봉투에 담아 보낸 연정이거나/ 소주 한 잔 건넬 줄 아는/ 텁텁한 인정이거나/ 머리카락 쓸어 넘기는 여인이야/ 못 만나더라도/ 떠나면 만난다// 방구석에 결코 만날 수 없는 무언가를/ 떠나면 만나게 된다//산허리에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은사시나무 잎새들/ 배를 뒤집는 여름날/ 혼자면 어떻고/ 여럿이면 또 어떤가?/배낭 매고 기차 타고/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
손광세 [여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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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 시인 양산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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