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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달콤쌉싸름한 나의 이야기 >행동이 미래를 만든다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12.10.08 00:54 수정 2013.07.27 12:54

ⓒ 웅상뉴스
영화도 보고 가을 옷들을 꺼내 정리도 하고 낮잠도 자고 빈둥대다가 오후 늦게 집을 나왔다. 일이나 할까 싶어 나왔지만 달리 갈 데도 없어 을숙도로 향했다. 한때 아침저녁으로 들락거렸던 을숙도였다. 연휴라 텅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차들과 사람들로 붐볐다. 자동차 전용극장에도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산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하구에서 갈 만한 데라곤 을숙도와 다대포 정도였다. 마땅히 차를 주차할 만한 공간이 없어 나오는데, 도로 건너편 생태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부지에 조성된 생태 공원은 한적했다. 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고 바람은 기분 좋게 쌀쌀하고 서쪽 하늘로 기울어져 가는 해는 노란 빛을 뿜어냈다.
공원 입구 근처 차를 세우고 리어카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는 조수석에 앉았다. 창 너머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얀 구름이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앉아 구름을 오래오래 바라본 적이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흘러가던 구름이 아주 자연스럽게 합쳐지는 걸 보고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나는 아주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앞이 막막했고 뿌연 안개로 가려져 있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 다니던 도서관에도 가기 싫어 매일 아침마다 을숙도에 들리곤 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다시 다대포 바닷가로 가서 한두 시간 죽치곤 했다. 일 년 내내 하루도 빠진 적이 없었다. 늘 바쁘게만 살아왔던 나로선 맘껏 여유를 부린 시간이었다. 몇 시간이나 차 안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하늘과 구름과 나무를 바라보기도 하고 처음으로 가슴 속 깊이 웅크리고 있는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도 했다. 나중에 그런 내 자신이 너무 지겹고 넌더리가 났지만 그래도 습관적으로 순례를 했다.
‘행동이 미래를 만든다’ 요즘 나는 절실하게 공감하고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도. 그때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낸 댓가를 요즘 나는 톡톡히 치루고 있다. 후회를 해 보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넘어갔다. 나뭇가지 사이로 옅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아, 좋다. 나도 모르게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그랬다. 그때도 나는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어둠을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낼 때도 나는 온 세상을 은빛으로 물들이는 달빛을, 철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볏짚더미에 떨어지는 황금빛 햇살을 좋아했다.
그렇다. 나는 뼛속까지 시골 아이였던 것이다. 사실, 차를 몰고 을숙도로 오면서 나는 그동안 잘못 살아오지 않았나 싶었다. 내내 억눌려 왔던 감정이 터져 나왔고 슬펐다. 우울했다. 지금부터라도 잘 살아가려고 애쓰면 되겠지, 하고 마음을 다독거렸지만 그래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했다고 후회했다.
그랬는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결국 헛된 시간을 보낸 게 아니었다. 별로 성과를 내지 못한 시간들이었지만 그러한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을까.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풍경을 보고 있지만 나는 그때와 다른 눈으로, 마음으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낫다고 볼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
/김서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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