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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령처럼 떠도는 탈북자들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12.08.19 13:01 수정 2012.10.03 01:01

‘유령’/강희진

세계일보 1억원 고료 문학상을 받은 ‘유령’은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살아가는 탈북자 청년을 중심으로 살인사건, 가상세계와 현실과의 괴리, 국외자들의 소외와 일탈, 혁명 등의 소재를 엮은 작품이다. 탈북해서 중국에서 2년간 살다가 남한에 들어와 대학까지 나온 주인공은 현실에서 백수 폐인이지만 온라인에서는 리니지 최고 영웅으로 살아간다. 그를 중심으로 주변 탈북자들의 사연이 펼쳐진다.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정주 아줌마, 눈알 뽑혀 죽은 회령 아저씨,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피시방에서 죽치고 있는 고향 후배들 등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향수, 그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살제로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일어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츠 해방전쟁과 연계되어 시종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나빠디도 너울 쪽도 집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차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하는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백석공원에 있는 백석의 시비에 적혀 있는 ‘모닥불’이란 시다. 이 시비 앞에 눈알로 제사상을 차린 사건이 일어나고 소설이 전개된다. 용의자로 몰려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고 나온 주인공은 모닥불을 읽고 한동안 가만히 있는다. 가슴속에서 뭔지 뭉클한 것이 밀려 올라왔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게임은 현실인데요. 똑같은 건데요.”
주인공은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는 의사의 말에 강하게 반박한다. 그는 게임을 하면 편안하다. 실은 그곳은 현실보다 더 피가 튀기는 공간이지만, 게임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따뜻한 방 안의 이불 속 같다. 솔직히 말하면 이불 속이 아니라 자궁 안 같다. 엄마의 자궁. 그는 그 속에서 몸을 벌레처럼 돌돌 말고 있는 작은 생명체다.
이처럼 주인공은 게임 속에 푹 빠져 현실을 잊고 산다. 그 이유가 뭘까? 작가 강희진은 젊은 탈북자들의 고민과 탈북한 이후의 남한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진화된 분단 문학의 면모를 잘 그려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오인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삶의 허무함과 비극성, 유령처럼 떠돌면서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비참한 삶을 현재의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그는 탈북자인 ‘하림’이란 인물을 만들어 낸다. 하림은 남한과 북한 사이, 남한 내에서 남한 출신과 북한 출신 사이, 그리고 현실과 사이버 공간 사이의 경계에서 존재론적 위기를 극적으로 경험하며, 경계선의 생태 위기를 깊게 환기시킨다.

이 책을 두 번 정도 읽었다. 차분한 문장으로 현실과 게임을 자연스럽게 엮어가는 것이 돋보였다. 끝으로 가슴을 찡하게 만든 문장을 소개해 본다.
“나는 애니메이션(공각기동대)의 인물들처럼 인형으로 살고 싶지 않다. 그들 모두가 나처럼 복제된 인간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도, 어머니도, 고향도, 어린 시절의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다. ‘고스트가 없는 슬픈 존재’들이다. 인형들이다.……나는 이름도, 어머니도, 어린 시절의 기억도 가지고 있다. 비록 불완전한 것이지만…. 그러므로 나는 인형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난 자꾸 내가 인형이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을까? 영화 속의 인물들처럼 허구로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김서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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