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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은 삶의 공간”…문학철 시인, 다시 세상 속으로 한 걸음

김경희 기자 입력 2026.08.21 08:48 수정 2026.08.21 08:48

다섯 번째 시집 『허공에 슬며시 몸을 밀어 넣다』 출판기념회
구모룡 평론가 “애도를 넘어 관조로…시적 경계 한층 깊어져”

문학철 시인(가운데)이 『허공에 슬며시 몸을 밀어 넣다』 출판기념회에서 구모룡 문학평론가(오른쪽), 사회를 맡은 김명관 시인과 북토크를 하고 있다.

[양산웅상신문 김경희 기자] 문학철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허공에 슬며시 몸을 밀어 넣다』를 펴내고 독자들과 만났다. 지난 20일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동료 문인과 지역 문화예술 관계자, 독자 등이 참석했으며 김명관 시인의 사회로 정선호 경남작가회의 회장의 축사, 구모룡 문학평론가의 시평, 자작시 낭독, 북토크와 독자와의 대화 등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문 시인은 교단을 떠난 뒤에도 양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시와 소설을 써왔다. 문학지 『주변인과 문학』의 편집을 맡아 전국 문인들의 작품 발표와 문학 활동에도 힘을 보태는 등 꾸준한 문학 활동을 이어왔다.

이날 문학철 시인은 감사 인사말을 대신해 시집 출간 뒤 쓴 미수록 작품 「우물을 치다」를 낭독했다. 좋은 우물도 계속 길어 올리지 않으면 고인 물이 되듯 시심 역시 끊임없이 길어 올려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를 쓰는 자신의 태도를 담아낸 작품이다.

이어 시집 출간을 앞두고 마지막에 완성해 수록한 「봄날 아침에」도 직접 낭독했다. 문 시인은 평론을 위해 원고를 넘길 당시에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작품을 마무리해 다른 시 한 편을 빼고 새로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집의 제목 『허공에 슬며시 몸을 밀어 넣다』는 문 시인이 통도사 무풍한송길을 걸으며 얻은 시적 체험에서 비롯됐다.

안개가 자욱한 날 무풍한송길을 걷던 그는 젖은 솔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길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허공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순간의 감각이 표제작의 시적 이미지가 됐다.

문학철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허공에 슬며시 몸을 밀어 넣다』 출판기념회에서 작품세계와 시집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문 시인에게 ‘허공’은 안개에 싸인 숲에만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문 시인은 독자의 질문에 “1차적으로는 무풍한송길, 안개 자욱한 무풍한송길 그 자체를 이야기한 것이고, 달리 말하면 삶의 공간”이라며 “그 무렵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내가 세상으로 좀 다가가자는 의미도 조금 들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집 해설을 맡은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서 문 시인의 시세계가 이전보다 한층 깊어졌다고 평가했다.

구 평론가는 문 시인이 문학지 『주변인』을 통해 일찍부터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문학정신을 펼쳐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의 마음이 깊어지고 시적인 경계가 지난번 시집보다 훨씬 더 나아가는 느낌을 받았다”며 삶을 관조하는 시 정신에 이르는 과정에 주목했다.

특히 문학작품을 하나의 완성된 성취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삶과 함께 작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깊어지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시집의 변화에는 아내와의 사별 이후 문 시인이 지나온 시간도 깊게 자리하고 있다.

문 시인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3년 동안 집에 사람을 부르지 않았으며 자신도 가능한 한 외출하지 않고 지냈다고 털어놨다. 3년이 지나서야 다시 사람들을 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애도의 감정 역시 없어졌다기보다 조금씩 옅어졌다고 말했다.

구 평론가는 이전 시집 『산속에 새 든다』가 돌아가신 아내를 향한 애도의 정서가 강한 시집이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그 슬픔이 삶과 죽음에 대한 보다 넓은 인식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람은 모두 다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며 동아시아의 ‘애이불상(哀而不傷)’, 즉 슬퍼하되 자신을 상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는 않는 정신을 언급했다. 또 문 시인이 돌아가신 아내를 선녀로 불러 다시 만나는 작품 등을 통해 애도의 감정이 불교적 관조와 연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통도사와 주변의 자연은 문 시인의 시세계를 형성해 온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다.

문 시인은 대학 졸업 무렵 교사로 지원하기 위해 처음 통도사를 찾은 뒤 오랫동안 이 일대에서 생활했다. 최근에는 통도사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며 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다. 그는 통도사 주변의 여러 장소와 지명이 자신의 시에서 공간적 배경이 되고 시적 상상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구 평론가는 표제작에서 시인이 허공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바깥의 사물들이 시인의 몸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인간과 사물이 일방적으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으로 들어가 생동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이번 시의 중요한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참석자들의 시 낭송도 이어졌다. 김윤아 시낭송가는 구 평론가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은 「살구나무 꽃 그늘에서」를 낭독했으며, 독자들은 시집 제목에 담긴 ‘허공’의 의미와 작품에 나타난 불교적 사유 등에 대해 질문하며 시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문 시인은 행사를 마치며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가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어디에도 가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오셨다는 것은 저한테 어떤 마음을 내주신 거거든요. 참 따뜻하고 고운 그 마음들, 정말 감사히 받겠습니다.”

안개에 싸인 무풍한송길에서 만난 ‘허공’은 시인의 삶을 통과하며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한동안 세상과 거리를 두었던 문학철 시인에게 이번 시집의 허공은 비어 있는 곳이라기보다 다시 삶으로 들어가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 공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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