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24소사 '우화'와 연결되는 국가 제례의 터…신라에서 조선까지 제향 이어져
우불산성·당촌마을·회야강 아우르는 역사문화축 조성하고 시민 접근성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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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웅상신문 김경희 기자] 양산시 용당동 당촌마을을 지나 우불산 자락으로 들어서면 기와 담장에 둘러싸인 작은 사당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석축 기단 위에 자리한 제당 중앙에는 '우불산신사(于佛山神祠)'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출입문 앞에는 수령 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서 있다.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187호인 우불산신사다.
사당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곳에 쌓인 시간은 천 년을 훌쩍 넘어선다. 신라시대 국가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빌었던 국가 제례와 연결되는 유적으로,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제향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오랜 역사적 가치에 비해 우불산신사는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우불산신사와 인근 우불산성, 당촌마을 등 웅상의 역사문화자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시민들이 쉽게 찾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신라 국가 제례에 등장하는 '우화'
우불산신사의 역사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의 국가 제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는 나라의 중요한 산천을 제사의 대상으로 삼고 중요도에 따라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구분했다. 『삼국사기』 권32 제사조에는 전국 24곳의 소사가 기록돼 있으며, 그 가운데 '우화(于火)'가 등장한다.
이 '우화'는 우불산신사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관련 제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사는 나라에서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국가 제례체계의 하나였다. 우불산에서는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으며, 가뭄이 들었을 때는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도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마을 산자락의 작은 사당으로 남아 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불산은 한 마을의 신앙공간을 넘어 국가의 제례체계와 연결된 장소였던 셈이다.
우불산신사는 이러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1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87호로 지정돼 보존·관리되고 있다.
■ 왕조가 바뀌어도 이어진 제향
신라시대 국가 제례와 연결된 우불산의 제향은 왕조가 바뀐 뒤에도 명맥을 이어왔다.
조선 인조 때 사우와 재사를 증·개축했으며, 이후에도 재건과 중수를 거쳤다. 과거에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하정일(下丁日)에 제례를 거행했으며 제관과 제기, 복장과 절차 등 전통적인 제례 형식도 이어져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우불산신사의 가치는 사당 건물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산을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던 사람들의 믿음과 그곳에서 행해진 제례, 오랜 세월 제향을 이어온 지역 공동체의 기억이 함께 남아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불산을 둘러싼 여러 민간전승도 이곳이 지역민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인식돼 왔는지를 보여준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우불산신사에서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와 임진왜란 당시 우불산 일대에서 신비한 힘의 도움으로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사당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변고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민간에 남아 있다.
이러한 전승을 역사적 사실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 주민들이 우불산을 신성한 공간으로 받아들여 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야기 유산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 우불산신사 곁에 남은 또 하나의 역사, 우불산성
우불산신사의 가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인근 우불산성과 주변 지형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불산성 일대는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있다. 우불산성에서는 서창에서 덕계 지경고개까지 바라볼 수 있고, 회야강과 대운산을 비롯한 웅상 일대의 산지가 넓게 조망된다. 이 같은 지형은 먼 거리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데 유리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양산시는 지난 2021년 우불산성 남문과 암문 터 등에 대한 발굴조사를 추진하기도 했다. 우불산성과 우불산신사의 복원·정비는 웅상의 역사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역사문화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주요 사업으로 꼽힌다.
산 아래 당촌마을 역시 우불산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당촌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우불산이 '당갓'으로 불리던 시절 그 아래 마을이 형성되면서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촌마을에는 우불산신사와 우불산성뿐 아니라 마을 당제 등 옛 공동체 문화의 흔적도 남아 있다.
■ 문화유산은 있지만 시민에게 다가가는 길은 부족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역사문화자산이 시민들의 일상과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불산신사는 당촌마을 안쪽 우불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역사문화유산을 찾아오는 시민과 외지 방문객을 위한 접근 환경과 안내시설을 개선하고, 우불산신사와 주변 문화유산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탐방체계를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웅상지역 역사보존 및 관광 인프라 확충을 위한 정책제안'에서도 우불산신사와 우불산성에 대한 발굴 및 정밀조사와 함께 접근로와 주차장 정비, 안내소와 전시공간, 해설판과 QR·AR 안내체계 등을 갖추는 방안이 제시됐다. 우불산성 일부 성벽과 성문 정비, 관람 데크와 보행로 설치, 전망 공간 조성 등의 방안도 제안됐다.
문화유산은 보존하는 것만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기 어렵다. 시민들이 직접 찾아가 보고 그곳에 쌓인 시간을 이해할 수 있을 때 과거의 유산은 오늘의 문화가 된다.
■ 회야강·당촌마을과 잇는 역사문화축 필요
우불산신사를 시민 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사당 하나만을 대상으로 한 정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불산 아래에는 회야강이 흐른다. 천성산과 대운산 일대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모여 웅상을 관통하는 회야강에는 덕계천과 주진천, 명곡천, 소주천, 주남천, 용당천 등 여러 지류가 합류한다.
우불산신사와 우불산성, 당촌마을, 회야강을 하나의 역사문화축으로 연결하면 각각 흩어져 있던 자원이 하나의 이야기를 갖게 된다.
정책제안에서는 당촌마을의 옛길과 당산나무, 옛 우물 등을 활용한 마을 탐방코스를 비롯해 주민 역사문화 해설사 양성, 청소년 마을 기록 프로젝트, 우불산신사·우불산성 역사 해설 투어 등을 제안하고 있다. 우불산성과 마을 탐방코스를 연결하고 역사문화 해설과 문화예술 프로그램 등을 결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는 단순히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개발의 문제가 아니다. 웅상은 산업화와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신도시와 주거단지, 산업시설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옛 마을의 풍경과 생활문화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정책제안 자료 역시 개발 압력으로 전통마을 경관과 문화자산의 원형 보존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지역의 역사자료를 수집하고 경관을 보존해 교육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종합적인 역사보존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 천 년의 역사를 시민의 품으로
우불산신사는 크고 화려한 문화유산이 아니다. 그러나 작은 사당에는 신라의 국가 제례에서 조선시대 제향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긴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 곁에는 우불산성이 있고 산 아래에는 당촌마을과 회야강이 이어진다. 이들을 하나의 역사문화공간으로 바라보면 우불산신사는 더 이상 산자락에 홀로 남은 작은 사당이 아니다. 웅상이 어디에서 시작됐으며 어떤 역사와 문화를 품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연결점이다.
도시가 빠르게 변할수록 무엇을 남기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더 중요해진다.
천 년 전 사람들은 우불산에서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빌었다. 이제는 오랜 세월 가려져 있던 우불산신사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시민들이 찾아가 보고 배우고 기억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되돌려 놓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