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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창간기획] 사라지는 웅상의 기억, 지금 기록해야 한다

김경희 기자 입력 2026.08.21 06:30 수정 2026.08.21 06:30

개발 속 사라지는 마을·옛길·당산나무·우물…생활사도 소중한 문화유산
덕계·평산·소주·서창 아우르는 ‘웅상역사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요
주민 구술·옛 사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청소년 참여하는 마을 기록사업으로 이어가야

용암마을

[양산웅상신문 김경희 기자] 도시는 빠르게 변한다. 논과 밭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와 공장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오가던 옛길은 새로운 도로에 자리를 내준다. 마을 어귀를 지키던 오래된 나무와 우물, 돌담도 하나둘 자취를 감춘다.

공간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 “예전에는 여기가 논이었다”, “이 길로 장에 다녔다”, “저 나무 아래에서 마을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으면 한 세대가 지나면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진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쳐온 웅상도 예외가 아니다. 덕계·평산·소주·서창으로 이어지는 웅상지역은 신도시와 산업단지, 주거지역이 확대되면서 도시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는 동안 이곳에 어떤 마을이 있었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웅상지역은 양산 동부생활권의 중심으로 성장해왔지만 그 이면에는 근대 산업화 이전의 농촌문화와 지역 민속, 향토자원이 남아 있다. 신도시 개발과 주거단지 확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전통마을 경관과 문화자산의 원형을 보존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도시가 더 변하기 전에 웅상의 과거와 현재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기록해야 할 이유다.

문화재만 역사가 아니다

지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지정문화유산이나 오래된 건축물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한 지역의 역사는 이름난 문화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매일 걸었던 골목길과 물을 길었던 우물, 마을 어귀를 지키던 당산나무, 오래된 집과 시장도 지역의 역사를 구성한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냈던 제례와 놀이, 오래된 지명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지정문화유산이 아니더라도 한 지역의 삶을 보여주는 흔적이라면 소중한 생활사 자료가 될 수 있다. 전통가옥과 마을 당산나무, 옛길, 우물 등 생활사 유산을 조사해 관리하고 역사경관을 보존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지역의 생활사를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웅상 생활사 박물관(가칭)’ 설립도 검토할 만하다.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선을 지정문화재에서 평범한 주민들의 삶과 기억까지 넓힐 필요가 있다. 오늘은 흔하게 보이는 골목과 오래된 집 한 채가 개발 이후에는 다시 볼 수 없는 지역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사라진 뒤에 기록하려 해서는 늦는다.

 용암마을 당산나무 줄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록’

웅상의 생활사를 보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은 기록이다. 덕계·평산·소주·서창동의 구술사와 사진, 문헌, 고지도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웅상역사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지역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는 ‘마을 기록 프로젝트’도 한 방법이다.

디지털 아카이브가 구축된다면 행정기관이나 연구자가 보유한 자료뿐 아니라 주민 개인이 간직하고 있는 기록까지 한곳에 모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오래된 사진 한 장도 중요한 지역사 자료가 될 수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마을 모습, 지금은 사라진 가게와 시장, 예전의 하천과 들판, 학교 운동회와 마을 행사, 가족들이 집 앞에서 찍은 사진에도 당시의 건물과 길, 사람들의 옷차림과 생활상이 남아 있다. 한 가족의 추억이 시간이 흐르면 지역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사진보다 먼저 사라지는 ‘사람의 기억’

사진과 문헌보다 더 서둘러 기록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의 기억이다. 오랫동안 한 마을에서 살아온 고령 주민들이 알고 있는 옛 지명과 마을길, 사라진 집과 가게, 공동체 행사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문헌에서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

웅상지역 고령 주민들의 구술을 체계적으로 채록하고 사진과 영상, 음성 등으로 남기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지역 어르신들의 구술사를 학생들의 체험학습과 연계하는 세대통합 프로그램도 시도할 수 있다. 지역 주민을 역사문화 해설사로 양성해 자신이 살아온 마을의 역사를 직접 들려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공식 기록에 남은 역사와 주민들의 기억 속 역사는 서로의 빈틈을 채울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까지 기록해야 지역의 역사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어르신은 이야기하고 청소년은 기록하고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교육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학생들이 자신이 사는 마을의 어르신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옛 사진 속 장소를 찾아 현재의 모습을 다시 촬영할 수 있다. 이곳에는 예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이 길은 어디로 이어졌는지, 아이들은 어디에서 놀았는지 묻는 작은 질문에서 마을의 역사는 시작된다.

어르신은 기억을 들려주고 청소년은 글과 사진, 영상으로 기록한다. 그 자료가 디지털 아카이브에 차곡차곡 쌓인다면 한 세대의 기억은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학생들에게도 자신이 사는 지역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 지역사는 교과서 속 먼 과거가 아니라 자신이 매일 걷는 골목과 동네의 이야기가 된다.

주민들이 직접 역사문화 해설사로 참여해 지역의 이야기를 방문객에게 들려줄 수도 있다. 주민이 자신의 지역을 기록하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에는 아카이브, 지역에는 생활사박물관

수집한 기록을 시민들과 공유할 공간도 필요하다. 웅상 생활사 박물관(가칭)’은 지역의 생활사를 보여주는 소규모 전시·체험 공간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가 온라인에서 웅상의 기록을 저장하고 누구나 찾아볼 수 있도록 한다면 생활사박물관은 시민들이 실제 자료를 보고 자신의 기억을 보탤 수 있는 오프라인 거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주민이 참여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행정기관이 선택한 유물만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주민들이 오래 간직해 온 사진과 기록을 내놓고 그 자료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남길 수 있어야 한다.

마을별 옛 사진과 지도, 사라진 지명, 시장과 학교, 농촌에서 산업도시로 변해온 과정 등 주민들의 삶 자체가 전시의 주제가 될 수 있다.웅상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웅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기록에서 보존으로, 보존에서 활용으로

기록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자료를 수집한 뒤에는 가치 있는 생활사 유산과 역사경관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역사자료 수집과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서 시작해 전통가옥과 당산나무, 옛길과 우물 등 생활사 유산을 관리하고 이를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다만 관광자원화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정확한 조사와 기록, 보존이다. 무엇이 있었는지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광시설부터 만든다면 정작 지역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를 잃을 수도 있다. 오래된 것을 새것처럼 만드는 것보다 그곳에 어떤 시간이 있었는지를 먼저 기록해야 한다.

웅상 전체 아우르는 역사보존정책 필요

웅상의 역사 기록을 개별 마을이나 민간단체의 노력에만 맡겨둘 수도 없다. 덕계·평산·소주·서창을 아우르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역사보존정책이 필요하다. 지역 역사문화 보존이 일회성 사업에 머물지 않도록 ‘양산시 웅상지역 역사문화 보존 및 활용 조례’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료 수집에서 보존, 교육과 활용까지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행정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개발사업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마을이나 생활공간은 개발 이전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 지도, 주민 구술 등을 통해 기록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도시개발과 역사보존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도시를 만들면서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함께 기록할 수 있다. 도시의 모습은 바뀌어도 기억까지 지워져서는 안 된다

웅상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가 만들어지며 새로운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할 것이다.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까지 모두 지워버릴 필요는 없다. 웅상은 양산 동부생활권이면서 동시에 고유한 생활사와 민속문화를 간직한 공간이다. 개발 속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역사자료를 수집하고 경관을 보존하며, 이를 교육과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역사보존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기록은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한 주민의 장롱 속에 잠들어 있는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할 수 있다. 오래된 골목을 기억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오늘은 평범해 보이는 풍경도 내일이면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지금 기록해야 한다.

신문 역시 지역의 오늘을 기록해 내일의 역사로 남기는 일을 한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의 오래된 기억을 돌아보고 남기는 일은 더욱 의미가 있다. 도시의 모습은 바뀌어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웅상의 미래를 만드는 일은 웅상의 기억을 기록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료 제공=최연화 양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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