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칼럼] 신석기 유물부터 명당까지, 웅상출장소 일대의 장대한 역사

김경희 기자 입력 2026.07.13 09:57 수정 2026.07.13 09:57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 박극수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 박극수

웅상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청동기시대부터였다고 전해왔다. 최근 웅상출장소 일대 아파트 건립을 하면서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되어 신석기시대부터 집단생활을 하면서 거주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도 인접 농지에서 농사일을 하다 간석기를 발견하여 양산시립박물관에 가져다 준 일이있다. 원시시대때는 문자도 없었고 풍수지리란 용어도 없었다. 사람들이 거처 할 곳을 정할때는 동물적 감각으로 지정하였을 것이다. 고대 취락지역이나 집단 고분군 자리마다 현대 풍수지리설을 적용해 보면 명지중 명지에 자리를 잡았다.

웅상출장소 일대의 신석기시대의 환경을 추정해 보면 회야강변에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농경생활 하기도 좋은 지역이고 천성산과 대운산이 둘러있어 산짐승들이 많아 사냥감을 구하기도 용이하고 회야강에는 서식하는 고기들이 많아 고기잡이 하기도 좋은 곳 이었을 것이다.대홍수가 와도 수해피해와 산사태의 우려가 없고 일조량도 풍족한 곳이며 물류 이동조건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회야강 상류에서 동해바다까지 배가 왕래하였다는 구전도 있고 주진(周津)의 지명으로 보아 나루터가 있었던 마을임을 알 수 있다.

경주와 동래를 통하는 육로는 신라때부터 형성되었고 고려시대부터 부산시 기장군 정관읍 월평에는 아월역이 개설 운영되었고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곡천에는 간곡역이 개설되었으며 웅상출장소와 인접마을인 명동(옛지명 홈실 명곡)마을 세정각단(옛지명 주막각단)에는 간이역 원터가 있었다. 명동마을에는 우시산국 부족국가 때 병사들이 훈련하고 마숙놀이를 하다 신라 거도라는 장수가 지휘하는 군대와 전투를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평(마산밭) 장토(장토걸)라는 지명을 가진곳이 있으며 주진에는 화랑들이 수련하였던 곳이라 하여 지명이 화랑들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온다. 오랜 옛날 화폐처럼 통용된 철을 제련한 쇠물터(점터)라는 지명을 가진곳이 명동과 주진마을에 있으며 철을 제련한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다.

웅상출장소 일대에 일제 때는 농민훈련소가 개설되었다. 전국청년농업인 중 선진농업을 할 의지가 확고한 농민들을 선정하여 입소하게 하여 장기간 합숙을 하며 직접 농사를 지으며 이론과 실제 체험으로 농사기술을 습득하게 하였던 곳이다. 그 흔적은 해방이 된 이후 1960년 후반경까지 남아있었다. 이곳에 농민훈련소가 개설된 경위는 이곳은 야중임야 상태로 낮은 동산으로 경사가 완만하여 농토로 개간하기도 좋은 곳이며 토양도 황토마사가 되어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토양이며 농업용수를 공급받기도 용이한 지역이라 선정되었을 것이다. 이곳의 흙을 재료로 하여 양질의 벽돌을 생산한 벽돌 공장도 있었다. 해방이 되고 개운중학교 설립에 중심이 되신 임상수 선생님은 개운중학교 설립을 위하여 현 출장소 주변 진등일대 토지와 현 소주공단 일대 우불등 일대 토지 100여만평을 불하 받아 개운중학교 재단에 전부 기증하였다.

누누이 언급해도 부족한 자랑거리라 언급해왔지만 개운중학교 설립과정을 돌아보면 6.25전쟁통에 교실도 없고 교사도 없는 상태에 학생을 모집하여 교실은 웅상초등학교 교실을 빌리고 교사는 지역민 중 교사 능력이 있는 분들이 무임금 봉사로 수업을 했다. 웅상 초등학교에서 3년여간 현 출장소 부지에 지역민들과 학생들의 협조로 가교사를 건립하고 정식 학교로 소급 법인인가를 받아 1회, 2회, 3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현 개운중학교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1960년대 정부의 귀농정착민 유치 사업으로 진등마을이 이루어졌고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문동마을 천석꾼 부호의 아들 문동길씨가 출장소 일대 부지를 매입하여 국제적인 규모의 현대식 낙농목장인 주진목장을 조성하였다. 서부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목장광경을 우리 눈으로 바라볼수 있게 되었다.

축산업의 호경기를 타고 금성사료 대표 장명식은 일대 많은 토지를 매수하여 대형 양돈장을 건립 운영하고 울산대현에서 출생하여 성장해 서울에 거주하는 심완조 회장이 일대 많은 토지를 매입하여 식물원을 조성하였다. 주진 낙농목장은 규모면에서나 시설면에서 뛰어난 목장이라 정일권 국무총리와 김종필 국무총리도 다녀가고 박정희 대통령과 서독 뤼브케대통령의 방문 일정이 계획되기도 한 목장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서독 뤼브케대통령 방문 계획으로 부산-울산간 7번국도 초가지붕은 모두 슬레이트 지붕과 기와지붕을 강제로 두달 사이에 교체되고 주진목장에서 바라보이는 모든 주택지붕은 경남도와 양산시에서 지정한 색깔로 페인트 도색도 강제로 이행하도록 하였다.

주진목장 조성과 같은 시기에 웅상에는 대형목장들이 경쟁을 하다시피 많이 조성되었다. 효성목장, 경남목장, 신안목장, 창성목장, 신흥목장, 평산목장 등이다. 일반농가와 부산 오륜대 상류의 축산농가 이주대책으로 이주자들이 대다수 웅상으로 이주하여 젖소사육, 한우사육, 양돈사육, 양계사육, 사슴사육으로 웅상전역은 가축냄새가 진동하고 우수기에는 회야강 전체가 가축분뇨의 집하장이 될 정도였다.

이 시기에 전국 읍면별 젖소 사육두수가 웅상이 가장 많았다. 1980년대 농정실패로 축산농가들이 많이 도산을 하고 축산업을 하던 장소에 아파트가 건립되고 공장지역이 된 지역이 많다.

현 웅상출장소와 웅상문화체육센터가 건립되게 된 경위는 손유섭 양산시장 재임 시 웅상도시계획이 웅상출장소 일대는 공원지로 확정되고 현 명동공원 일대는 주거지역으로 확정되었다.

애향심이 누구보다 강하고 이를 실천해 왔고 웅상이 도시화하는 과정에 역대 양산시장 어느 분 보다 더큰 기여를 한 전 경상남도 도의원 박봉수, 현 양산시의회 의장 박일배, 전 웅상발전협의회장 박극수가 중심이 되어 현 명동공원 편입 토지 중 최대 토지소유자인 울산박씨 명곡문중원들을 설득하여 도시계획 위치 변경 요청하기로 결의하고 손유섭 시장과 이종출 도시개발단장, 도시계획계장 박종서, 양산시도시계획 용역을 맡은 원방 김병규 대표와 만나 도시계획지정변경 요청에 대하여 협의한 후 현 웅상출장소 일대 토지 최대 소유자인 장명식 대표와 심완조 대표를 상면하여 공원지로 확정된 토지가 도시계획변경이 되어 주거지역으로 지정되면 소유한 토지면적 중 10%를 양산시 공용청사 용지로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도시계획변경요청을 하여 도시계획 변경이 되어 현 웅상출장소 일대 토지를 기증받아 현 웅상출장소와 웅상문화체육센터가 건립되고 주변에는 아파트가 건립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명동공원 일대는 공원지로 지정되어 명동공원이 개설되었다.

웅상출장소 일대 지역은 회야강변에서 가장 먼저 우리 선조들이 집단 정착하여 문화발상지를 이루었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불씨를 지피게 된 곳이며, 교통 요충지이고 웅상의 교육발상지이기도 하다. 풍수지리설로 뛰어난 명지이고 부산, 울산의 가장 중심 역할을 할 장소로 알맞은 위치다. 장대한 역사를 창출할 위대한 곳으로 가꾸어 가야 할 지역이다.


저작권자 웅상뉴스(웅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