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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화진 양산시립중앙도서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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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신문 김경희 기자] 과거 도서관이 시험 공부를 위한 정적인 '학습실'이었다면, 지금 양산시립중앙도서관은 시민의 삶을 바꾸는 역동적인 '문화 사랑방'으로 거듭나고 있다. 단순히 책을 대출하는 기능을 넘어 시민들이 글을 쓰고, 공연하고, 사유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 중인 현장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온 정화진 관장을 만나 도서관의 미래와 지역 문학의 가능성을 짚어보았다.
Q: 최근 구추영 작가를 비롯해 지역 문인들의 북토크가 활발합니다. 도서관 차원에서 지역 작가들을 발굴하고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특별한 기준이나 철학이 있으신지요?
과거에는 지역에서 책을 한 권 내신 분들을 보면 그저 ‘책을 내셨구나’ 하고 지나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5년 전부터는 생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지역 공공도서관의 역할은 단순히 책을 비치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묵묵히 글을 쓰는 지역 문인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시민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도서관의 본질적인 기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전국 공공도서관 중 처음으로 ‘올해의 책’ 사업을 기존 베스트셀러가 아닌, 지역 작가의 작품이나 우리 지역의 정서를 깊이 담은 책들 위주로 선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카페 등을 빌려 어렵게 출판기념회를 하시던 작가님들이 이제는 우리 도서관에서 당당하게 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도서관이 문턱을 낮추고 작가님들의 창작 활동을 지지하자, 시민들과 소통하며 책의 가치를 나누는 건강한 문화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Q: 시민들이 직접 공연단이나 봉사단을 꾸려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도서관과 시민의 예술적 상생,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1관 1단(도서관마다 하나의 문화예술단체 육성)' 사업을 통해 도서관을 시민들의 무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음악 낭독극단, 동화 구연단, 인형극단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시민들이 단순한 수강생에 머루르지 않고 스스로 전문가로 성장해 간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교육을 받던 평범한 주부나 은퇴자분들이, 이제는 인형 탈을 쓰고 무대에서 노래하며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전문 공연단'이 되었습니다.
동화 구연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신 분들은 아이들에게 직접 동화를 들려주는 자원봉사자로, 낭독극단은 경로당과 작은 도서관을 찾아가 어르신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문화 전도사'로 활동합니다. 시민들이 교육의 소비자를 넘어, 지역 사회의 문화를 이끄는 강사이자 예술가로 거듭나고 있는 셈입니다."
Q: 이제 도서관은 '문화 사랑방'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도서관의 본질은 '사유'입니다. 좌석 수를 줄이고 북카페처럼 공간을 개방한 이유도, 시민들이 책을 읽고 스스로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 글을 모아 문집을 펴내고, 무대에서 직접 낭송하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인생을 사유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도서관의 목표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철학이 담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고, 그것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산을 삶이 기록으로 남는 문화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Q: 숏폼 영상에 익숙한 세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다시 ‘텍스트’와 ‘사유’의 즐거움을 찾게 하기 위한 도서관만의 비책은 무엇입니까?
억지로 책을 읽으라고 권하면 아무도 도서관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아리’를 매개로 접근합니다. 처음에는 동화 구연을 배우러 가볍게 발을 들였다가, 이후 자원봉사를 하며 보람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지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음악 낭독극단처럼 책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공연까지 해보면, 사람들은 비로소 텍스트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 체감하게 됩니다.
영상 매체가 주는 즉각적인 자극과는 또 다른, 텍스트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울림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도서관이 가진 가장 큰 힘이자 비책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웃의 작가' 시리즈 등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이 매우 뜨겁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양산 시민들의 문학적 수준이나 열망은 어느 정도인가요?
시민들의 문학적 열망은 예상보다 훨낀 깊고 뜨겁습니다. 중앙도서관에서만 운영되는 독서 동아리가 11개에 달할 정도니까요. 경제, 역사, 시,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준 높은 토론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시민들이 먼저 다가와 '어떻게 등단합니까?', '자서전을 쓰고 싶습니다'라며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린다는 점입니다.
양산 시민들은 이미 가슴속에 문학적 열망을 품고 계셨던 분들입니다. 도서관은 그저 그 열망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도록 무대와 기회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Q: 양산의 지역적 특성상 권역별 문화 격차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중앙도서관의 프로그램이 웅상을 비롯한 전 지역에 고르게 확산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요?
현재 중앙도서관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간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고 있습니다. 지역 작가와의 만남이나 각종 문화 프로그램 기획을 중앙도서관에서 총괄하여 각 권역별 도서관에 균등하게 배분하고 있습니다.
특히 웅상도서관은 오는 6월 리모델링 완료 이후 더욱 풍성한 콘텐츠로 시민들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중앙도서관이 축적한 노하우가 어느 지역에서도 소외되지 않고 양산 전역에 퍼질 수 있도록 촘촘한 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Q: 양산의 문화적 자부심이 되기 위해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양산 시민 모두가 자녀에게 책 한 권을 물려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집 한 채 물려주는 것보다, 내 철학과 삶이 담긴 책 한 권을 유산으로 남기는 것이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중앙도서관 내에 작지만 의미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쓴 자작시를 멋진 배경음악과 조명 아래에서 낭송할 수 있는 무대, 그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양산시립중앙도서관의 변화는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섰다. 시민들이 직접 쓰고, 만들고, 공연하는 이곳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시민 문화 예술제를 방불케 한다. 오는 6월 웅상도서관의 재개관과 함께, 책을 넘어 삶을 짓는 문화 사랑방의 풍경이 양산 전역으로 더욱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