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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문화일반

[인문기행] 작두 탄 무당처럼 논어를 삼키다, 웅상의 ‘이예로’ 위에 되살아난 선비의 숨결

김경희 기자 입력 2026.03.30 10:10 수정 2026.03.30 10:10

근재공 고택 툇마루에서 울린 논어 강독, 봄 햇살 속 인문 수련
500년 전 선비의 길, 이예로·통신사로로 이어진 정신의 계보
“배우고 익히는 기쁨”… 삶으로 논어를 받아들이는 도반들

부남철 교수가 근재공 고택 마루에 앉은 영산대학교 인문문화융합학과 도반들에게 고전 암송을 통한 인격 수양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봄날의 햇살이 고요하게 내려앉은 근재공 툇마루. 푸른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들 사이로 논어의 문장이 낮게 울려 퍼진다.

이동성 영산대학교 인문문화융합학과 교수가 논어 전체를 암송하고 툇마루와 돌담에 옹기종기 앉은 영산대학교 인문문화융합학과 도반 30여 명은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인다. 문장 사이로 가끔 새 소리가 끼어들고 얼굴에 와 닿는 햇살은 점점 몸 깊숙이 스며든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이어지는 한자어들이 생경하지만 말의 울림과 간극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유추해본다. 이어 선배들이 논어와 경재잠, 사물잠을 차례로 강독한다.



500년 전 선비들이 스스로를 닦던 문장들이 100여 년 전 이재락 선생이 독립을 위해 밤잠을 설치며 군자금을 챙기던 결기의 현장인 근재공 고택에 다시 살아난다. 세월의 겹을 통과한 고택에는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숨결이 여전히 머물러 있는 듯하다.

부남철 교수의 강의는 사유를 한층 깊게 만든다. “공자가 안연에게 일러준 극기복례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른바 사물잠이다.

이어 “정기의관 존기첨시”라는 경재잠의 가르침이 덧붙는다.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존엄하게 하여 밖을 다스림으로써 안을 통제하는 수양법이다.

고택의 사유는 자연스럽게 곧 울산과 양산을 잇는 ‘이예로’와 ‘통신사로’의 주인, 조선 초 최고의 대일 외교관 충숙공 이예 선생으로 이어진다. 이예 선생은 세종대왕의 각별한 신임을 받으며 40여 차례 일본을 오간 인본주의 외교관이다.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당당한 기품을 간직한 울산 학성이씨 근재공 고택. 유교적 수양의 장소이자 독립운동가 이재락 선생의 결기가 서린 생가이기도 하다. 

그는 단순히 국익만을 챙긴 관료가 아니었다. 왜구에게 잡혀간 어머니를 찾기 위해 일생을 바쳤고 그 사적인 한을 공적인 사명으로 승화시켜 667명의 조선인 포로를 고국으로 데려왔다. 1443년 계해약조를 통해 임진왜란 전까지 왜구의 침입을 잠재운 그의 지략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마도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어머니를 찾던 그 간절함이 오늘날 우리가 걷는 이 길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원 인근의 재천정, 역시 예사롭지 않다. 공자가 시냇물이 밤낮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도다"라고 탄식하며 도를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이곳은 공부하는 자는 물가에 있어야 도에 가까워진다는 옛사람들의 철학이 깃든 곳이다.


지식의 극치에 도달하려는 선비들의 자부심이 서린 '치지제' 현판. 


이어 찾은 치지제는 대학의 ‘격물치지’의 뜻을 담은 공간으로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해 자식의 극치를 이르고자 했던 선비들의 정신이 서려 있다.

탐방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무심코 지나던 이예로가 이토록 깊은 서사를 품고 있다니. “기억하자”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 길은 어머니를 향한 지극한 효심이 닦은 길이며 나라를 지키려는 선비의 기개가 유구히 흐르는 길이다.

고택 마루에서 얻은 깨달음을 품고 커피숍에 모여 앉은 도반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얼굴에는 봄 햇살보다 더 깊은 생기가 넘쳐난다. 삶의 풍파를 지나온 시간 위에 논어는 더 이상 글이 아니라 몸으로 스며드는 사유가 된다. 마치 작두 탄 무당처럼 논어를 온몸으로 삼켜야 한다는 부남철 교수의 말처럼, 그 문장들이 사람들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는 듯하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커피향 사이로 번지는 도반들의 웃음소리가 웅상의 하늘 아래 낮게 퍼진다. 500년 전 선비의 문장은 그렇게 오늘날, 길 위를 달리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가장 뜨거운 생명력으로 부활하고 있었다.
지난 29일, 울산 석계서원과 근재공 고택 탐방에 참여한 영산대학교 인문문화융합학과 교수진과 학생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근재공 고택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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