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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田’ 소장,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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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살아온 내가 중학생이던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되며 지방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대학생이 되던 1995년 지방선거를 통해 지자체장이 직접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 군에 자원입대하던 1996년 양산은 군에서 시로 승격되며 30년을 달려왔다
.그사이 나는 학업과 다양한 경험을 위해 객지를 전전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경계에 선 주변인이자 문화의 토양이 척박한 터전에서 고군분투하는 경계의 문화인으로 서있다. 오히려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보다 더 간극을 느끼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노마드(방랑자)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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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으로 돌아와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지역사회를 향해 날 선 문제의식과 비판, 그리고 대안 제시, 나름의 실천 활동을 이어오는 동안 득보다는 실이 많았기에 차츰 공공의 활동들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못내 아쉬움이 많아 지역 신문의 지면을 빌어 생각을 피력해본다.
곧 6월이면 지방선거가 있기에 지역의 현안과 결부시켜 몇 차례에 걸쳐 글을 이어나가려 하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며 예전 나의 글 중 2019년의 ‘노마디즘(Nomadism)과 톨레랑스(Tolerance)’, 2020년의 ‘인사이더(insider)와 아웃사이더(outsider)’를 되짚어본다. 많은 글 중 유독 이 글을 소환하게 된 데는 점점 확증편향으로 치닫는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오는 피로감과 이분법의 프레임에 갇힌 관용 없는 지역사회의 한 면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 글이 여전히 유효한 서글픈 현실과 마주한다. 나는 그때도 사람과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그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전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통찰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 지역의 시계가 멈춰 서 있기 때문이다. 멈춤은 곧 퇴보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는 다시 한 번 양산의 사람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반세기 동안의 양산은 대한민국의 발전사와 괘를 같이 하며 고속도로의 관통 이후 1970~80년대 공업의 진전과 일자리 창출, 인구 유입이 가속화되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산업단지와 신도시 건설을 통한 인구 유입의 확대로 도시의 성장이 급진전 되어 왔지만,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그 시간 동안 외형적으로는 상전벽해한 도시의 빛 뒤로 그림자가 없지 않아 많기에 ‘관용없는 사회’로 포문을 열어본다.
그림자의 첫째는 사람이었다. 고향을 떠날 당시와 또 돌아와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그대로였다. 인구 10만여 명이던 그때에서 인구 37만 명을 넘어선 지금도 수적으로는 증가했어도 소수의 내부인들만이 그들만의 리그를 펼쳐가며 통합을 부르짖고 있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내 고향 양산이었다. 30년을 가열차게 달려와 준 선배 세대들의 공로는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으나 기득권이라는 이름의 장벽으로 거시적인 지역의 발전보다는 그들의 지위 유지와 세력 형성이 우선인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양산 사회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다. 이분법적 논리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인정하기보다는 흠집부터 잡으려는 태도, 다름을 적으로 간주하는 척박한 곳이다. 진영의 논리와 시기 질투의 장막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는 비단 양산만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독 양산은 관용이 사라진 확증편향의 도시이지는 않을까? 늘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제는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이분법을 넘어선 로컬크리에이터의 시대이다. 누가 먼저, 누가 오래 양산에 살았나보다 누가 양산에 뿌리를 내리고 가치를 생산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기득권의 철옹성을 허물고 지역의 자산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과감히 판을 깔아주어야 할 것이다. 한 세대를 풍미했던 그들이 다음 세대와 양산으로 이주해 온 유입인들을 위한 아량을 베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지방선거에 나서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공약 속에 관용이 있는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대안을 위한 치열한 토론이 보장되는 사회, 머물러 있지 않는 노마드(방랑자가 아닌 창조자)의 발걸음을 응원하고 서로의 다름을 껴안는 톨레랑스(관용)야말로 양산이 성숙한 도시로 나아가는 첫 번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선거에 나서는 이들에게 요구한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이 지역의 자산이 되는 “문화적 포용력을 보여달라!” ‘양산 방문의 해’라는 거창한 구호 뒤에 가려진 사람에 대한 홀대를 걷어내고 환대하는 성숙한 도시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런 포용의 지도자와 시민의 대표를 원한다.
“관용은 약자의 비굴함이 아니라 강자의 여유이다.” 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