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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양산포커스] 나무의 무(無)에서 생(生)의 인연을 읽다… 전이섭 작가의 ‘생철학’

김경희 기자 입력 2026.03.22 04:55 수정 2026.03.22 04:55

나무를 바라보는 일, 결국 나를 마주하는 성찰의 여정
4대째 이어진 모란의 기억, 반려 나무가 건네는 위로와 안녕

전이섭 작가

[웅상싱문=김경희 기자]= 나무는 단순한 땔감이나 가구의 재료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4대의 역사가 새겨진 기록관이며, 누군가에게는 상실의 아픔을 달래준 반려이자,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지난 18일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카페 ‘6월육일’에서 열린 전이섭 작가의 저서 ‘나無’ 북토크는 나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삶과 존재 철학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소수의 참석자가 모여 밀도 높은 사유를 나눈 이 자리는 작가가 수년간 나무와 교감하며 기록한 사진과 글, 그리고 직접 제작한 목공예 작품들을 통해 ‘생명의 순환’과 ‘반려의 의미’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전 작가는 이날 자리에서 나무를 대하는 자신의 관점을 ‘관물(觀物)’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황새 관(鸛)’ 자를 풀어 설명하며, 나무 위에 올라앉은 황새처럼 사물을 넓고 깊게 관찰하여 그 너머의 본질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나무는 ‘쓰임’의 단계를 넘어 일상의 삶과 함께하는 ‘반려’다.


작가는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며 규격화된 재료로 나무를 다루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무 고유의 질감과 형태를 살려 새와 물고기의 형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조형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 속 새와 물고기의 눈은 곧 작가의 혜안과 맞닿아 있으며, 형태와 재료가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합’의 미학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책 제목이자 전시 주제인 ‘나無’에 대한 해석도 남다르다. 전 작가는 “흔히 무라고 하면 ‘없다’거나 ‘아니다’라는 부정의 의미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채움과 비움이 같은 현상임을 뜻하는 색즉시공의 역설적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장작이 타서 재가 되고, 그 재가 다시 밭의 거름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듯,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결합하여 또 다른 ‘있음’으로 순환한다는 생의 원리를 설파한 것이다. 이는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사소한 주변에서도 행복을 찾는 깨달음”과도 일맥상통하는 그의 ‘생철학’이다.

이날 북토크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작가의 개인사와 결합한 나무의 기억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카메라 앞에서 형과 함께 섰던 그 모란 나무 아래서, 훗날 자신의 아이들이 똑같이 사진을 찍으며 4대에 걸친 가족의 서사가 완성됐다.

또한 투병 중이던 아내와의 이별을 예감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던 강진 여행에서 마주한 모란은, 슬픔을 자연으로 치유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찬란한 슬픔’의 상징이기도 했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나무의 냄새를 맡게 하고 모양을 보게 하며 자연으로 이끈 것은, 아픈 현실을 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결국 나무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전 작가는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척박한 현실과 자생력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138명의 지역 어르신을 인터뷰하며 양산의 근현대사를 기록한 『토포필리아 양산』이 정작 지역 도서관에 비치되지 않았던 사례를 언급하며, 소액의 지원금에 의존하기보다 예술가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며 자생적인 문화 토양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비루하게 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생력을 확보하는 것이 곧 예술가의 자존심이라는 대목에서는 청중들의 깊은 공감이 이어졌다.

복효근 시인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을 인용하며 참새 한 마리의 무게에도 휘청이는 대나무의 인간적인 면모를 긍정하기도 한 그는, 결국 나무를 바라보는 행위가 곧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처럼 지역 사회를 품고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는 전 작가의 고백은,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진 생태학적 지식을 넘어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존재의 안녕’을 묻는 묵직한 질문으로 남았다. 나무를 바라보는 일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결국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오며 참석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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