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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기고] 어찌 아무 말이 없노, 78년 세월이 하루 같구나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6.03.17 08:52 수정 2026.03.17 08:52

박극수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이 친구 영전에 바치는 추도사


지난 2월, 문화유산회복재단 박극수 경남본부장이 78년 지기 죽마고우를 떠나보내며 직접 작성해 낭독한 추도사를 본지에 보내왔습니다. 1948년 무자생(戊子生)들이 겪어온 현대사의 질곡과 뜨거웠던 우정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원문 그대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추운 겨울날 만나면 훈훈한 봄바람 소리를 내고, 더운 여름날 만나면 시원한 가을바람 소리를 내던 너가 어찌 아무말이 없노.
시끌벅적한 소리가 듣고 싶구나.
78년이란 세월이 짧은 세월이 아닌데 지나고 보니 하루 같기도 하고 너무 아쉽다.
그토록 건강에 자신만만하던 친구 영전에 우리 친구 일행이 이런글을 올리게 되다니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일생을 살아오면서 소시민의 위치를 능가해 보겠다는 욕심도 가져본 일 없이 소시민으로 만족하며 오로지 소시민의 도리에 충실하고저 안간힘을 다해 살아왔는데 어찌 하늘은 떠날 맘에 준비할 순간도 주지 않고 가족들은 떠날 것이라는 예상할 사이도 없이 야속하게 데려가시나요.

우리 명곡 무자생 친화계원들이 태어난 해는 해방이 되고 3년이 지난해 1948년에 태어났습니다. 그 시기 우리나라 사정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무지한 백성들이 사는 나라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태어난지 2년이 지난때 6.25전쟁이 일어나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마을마다 굶어죽는 사람이 한해 몇 명씩 생기고 소는 아프면 약을 지어다 먹여도 아이들이 아프면 약도 먹이지 않고 명이 있으면 살고 명 없으면 죽어라 하고 버려두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 친구 대다수는 극도로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밥도 양대로 먹지 못하고 보리밥도 많이 먹고 죽도 많이 먹고 무밥도 몸서리가 나도록 많이 먹었습니다.

옷은 성할때보다 갈기갈기 헤어저 기워 입는 기간이 훨씬 길었고 검정고무신은 찢어지면 서창장에 가 때워 신은 기간이 더 길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고 학교 교실은 여름에는 찜통이고 겨울에는 냉장고였습니다. 학교 공납금을 제때 내지 못해 벌받은 날도 많았습니다.

이런 끔찍한 환경에서 자라 이를 악물고 뼈가 으스러저도 사랑하는 나의 아내 자식들에게는 우리가 살아온 것처럼 살게 하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좋은 음식 먹이고 겨울에는 봄날같은 방에 잠재우고 여름에는 시원한 가을날 같은 방에 잠재우고 좋은 옷 입히고 좋은 신발 신기고, 학교 회비 때문에 추궁당하는 일 없게 하고 지식 풍부한 선비 자식 만드는게 우리들의 공통된 소망이었습니다.
살다 죽고 싶은 충동을 느껴도 나의 가족 행복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생명을 이어왔습니다.

친구야! 너는 이 사명에 어느 누구보다 성실했다. 직장 생활을 수십년 하면서 불볕 더위에 철판위는 불같이 떠거웠고 차가운 겨울에는 에이는 얼음판 같아도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인내한 너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너가 직장에서 하는 일은 곡관제조기술자 였던 것으로 안다. 기술 수준과 근무 성실도는 세계최고의 수준이란 소문도 들었다.
최고급 곡관 제조 과정은 엄청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고 엄청난 인내력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 했다. 너는 이런 고난의 작업을 훌륭하게 하였다 했다.

지금 이순간에도 오대양 육대주를 항해하는 세계 최대 선박들의 제조과정에 너의 기술력으로 제조된 곡관이 중요 부품으로 제조되어 완전한 선박이 되어 운행되고 있다.
너는 가장으로서도 최고의 가장이었고 국가 경제와 세계 경제에도 한몫을 한 삶의 종적을 선명하게 남긴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열심히 살아 끼니 걱정 안하고 자고 입고 자녀 학비 걱정 시키지 않고 살았고 현모양처 심추숙 여사님을 아내로 맞아 너무 큰 축복을 받았고 동주 미정이는 반듯하게 성장해 모범 시민으로 생활하고 있는게 너무 자랑스럽다.

너는 항시 행복하다고 큰소리를 쳤다. 허풍이 아니고 객관적 입장에서 볼때도 부러움을 살만한 행복한 사람이었다.
좋은 아내 두고 착한 자식을 가졌으니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했나.

고인은 울산박씨 명곡문중 종친회장을 맡아 종원들에게 숭조사상을 고취시키고 종원들간의 화합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종친회장으로 선임된 즉시 값비싼 예복을 가장 먼저 갖춘 자세만 보아도 종친 행사에 예를 다하는 열정으로 임하는 자세였습니다.
예복을 갖춘 지혜는 심추숙여사님의 사랑이 담긴 평소 생활자세 부분의 증표입니다. 지금도 이 예복은 입고 관속에 잠들고 있습니다.
문중 모든 행사에 다 참여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특히 학산서원에서 매달 행하는 초하루 보름 삭망 행사에 꼭 참석하였습니다.

명곡 입향조이신 박지영 할아버지 내외분과 임란 공신 박홍남 할아버지 내외분과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정비사업에 힘을 다해 좋은 선영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선조님들이 배향된 제실 귀후재 정비와 회의장 공사도 깔끔하게 하였습니다. 문중의 성실한 재정 기반 조성을 위하여도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여기 모인 죽마고우들의 모임인 명곡 무자생 친화계 회장을 맡아 부부동반하여 해외여행 국내여행도 여러차례 하고 해마다 몇회씩 최고급 음식을 먹고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경조사시에 전원 참석하는 친화력도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친구는 평범하고 소박한 삶은 살았지만 맡은바 직분의 도리를 다하는 성실한 삶을 살았다. 하늘나라에서도 이 공로를 치하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였으리라 믿는다. 우리도 멀지 않은 날 따라갈 것이다.
부디 평온한 저승생활되길 기원한다.
명곡 무자생 친화계원 일동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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