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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암 주지 지범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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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원효암 주지 지범스님은 2026년 설 연휴를 앞두고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현대인들을 향한 마음 다스림의 화두를 던졌다.
겨울 햇살이 차분히 내려앉은 고요한 도량에서 만난 지범스님은 오늘날 사람들이 겪는 깊은 불안의 원인으로 ‘바깥에서 답을 찾으려는 태도’를 지목했다. 스님은 “불교는 언제나 바깥이 아니라 마음을 보라고 말해왔다”며, 2026년은 더 많이 소유하고 성취하는 해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새해’에 대해 스님은 달력의 변화와 수행의 시간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달력이 바뀌는 것은 시간의 약속일 뿐, 한 생각을 새롭게 하고 집착을 내려놓는 바로 그 순간이 수행의 새 출발이자 진정한 새해라는 의미다.
특히 설 연휴를 앞두고 사람들이 가장 내려놓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강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 ‘자기 생각’임을 지적하며, 생각을 움켜쥔 채 괴로워하기보다 원효스님의 일심사상에 기초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불안과 조급함이 일상이 된 시대에 지범스님이 제시하는 수행의 태도는 명확하다. 달마대사의 ‘불식(不識)’과 숭산스님의 ‘오직 모를 뿐’을 예로 들며 자기 관념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모른다”고 할 때 비로소 텅 비고 밝은 지혜가 드러난다고 전했다. 이러한 마음의 열림이 있어야 타인을 이해하고 갈등을 화합으로 돌릴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스님은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에게 전한 좌선의 핵심 비결로 ‘관(觀)·식(息)·심(心)’ 세 글자를 제시했다.
첫째인 ‘관(觀)’은 있는 그대로를 지켜보는 관조의 미학이다. 다리가 저리거나 잡념이 생길 때 이를 없애려고 싸우는 대신, 그저 비추어 보기만 하면 몸과 마음은 스스로 조절을 시작한다.
둘째인 ‘식(息)’은 호흡을 통해 망념의 불길을 끄는 과정이다. 코끝에 의식을 두고 숨을 알아차리면 기혈이 순조로워지고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진다. 마지막 ‘심(心)’은 모든 생각과 감정의 근원인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은 억지로 참는 고행이 아니라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지범스님은 이를 ‘거문고 줄을 조율하는 것’에 비유하며, 너무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중도(中道)를 지킬 때 몸과 마음의 조화로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설명했다.
원효스님의 일심사상에서 비롯된 무애와 화쟁의 가르침은 지역과 세대, 이념의 갈등이 깊어진 오늘날의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범스님은 새해의 다짐으로 “내려놓고 싶은 것은 ‘분별’이요,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자비’”라고 정리하며, 분별이 사라진 자리에 자비가 남을 때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축원했다.
천성산 원효암에서 전해진 이 오래된 가르침은 설 연휴를 맞는 우리에게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바”라는 묵직한 질문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