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보이는 도시의 풍경과 대조적으로 나무는 상처 난 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상처 난 나무의 모습은 디카시 속 화자의 언어와 곧바로 연결됩니다.
“성형을 해야 하나 / 견적이 만만찮을 텐데”
나무의 벗겨진 껍질을 ‘성형’에 빗댄 유머러스한 발상은 가벼운 웃음을 주지만, 동시에 인위적 美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현대 사회의 압박을 풍자합니다. 상처를 감추라고 말하는 사회의 시선이 나무를 향해 투사된 것입니다.
“취직은 못 하겠지”
이 문장은 상처 난 외양이 능력과 별개로 평가받는 세태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나무는 본래 제 역할을 잘하고 있을 뿐인데도, ‘겉’을 기준으로 ‘취직 가능 여부’를 말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 사회 적응 일등 훈장”
결국 나무는 어떤 상처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도시 환경에 적응하며 제자리에서 산소를 뿜어내는 존재의 힘을 찬양하는 서정적 반전이 됩니다.
전체적으로, ‘상처 난 나무 = 상처 입고도 버티는 인간’이라는 은유적 겹침이 뚜렷하게 작동하며, 사회 비판·자기 성찰·유머가 함께 어우러진 좋은 디카시라 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성형’, ‘취직’ ‘훈장’등 은유의 방향은 좋지만 의미가 조금 넓게 흩어져 산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형이 필요하다고 누가 말했니? 상처 난 채로도 이 거리의 참모습이 되어 주는 너를’처럼 사진이 주는 핵심 이미지(벗겨진 껍질, 상처)를 중심축으로 고정하면 의미의 과도한 확산(성형→취직→훈장)이 줄어 집중도가 강화뿐만 아니라 여백이 제공되어 독자에게 사유의 공간을 남겨 깊이를 더해줄 것 같습니다.
남 승 흥 문학박사
한국디카시인협회회원
양산디카시인협회고문
한국문인협회회원
양산문인협회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