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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유럽 인문학여행13] 체코의 작가 보제나 넴초바의 ‘할머니’ 찾아가다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4.10.06 23:51 수정 2024.10.06 11:51

김서련 소설가
500코루나 주인공인 보제나 넴초바

체코의 작가 보제나 넴초바의 ‘할머니’ 배경이 된 마을에 있는 동상

체코 문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최초의 여성인 보제나 넴초바,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할머니> 작품에서 시골 생활을 그렸고 정확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견고하면서도 새로운 개성적인 언어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바로 <할머니>의 배경이 된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평화롭고 평화로웠다. 따뜻한 햇볕은 쿡스에서 파고들었던 차가운 기운을 몰아내고 저절로 흥이 돋아나게 한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걸어도 걸어도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들판 가운데에 나 있는 길은 청도의 둑길을 떠올리게 했고 한가롭게 걷는 일행의 뒷모습은 원동 강둑을 걷던 부산소설가협회의 산행을 연상케 한다.

체코의 ‘할머니’는 작품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을까. 내게는 두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와 외할머니. 어릴 적, 몇 년 동안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들과 함께 한집에서 산 적도 있고 한동네에서 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한없이 인자했고 아버지와 나이가 몇 살 차이 나지 않은, 스무 살에 할아버지와 재혼한 할머니는 동네 남자애들과 개구리를 구워 먹으려는 나를 나무라기도 했지만 자상했다.

그리고 곰방대를 입에 물고 옛날얘기를 들려주던 외할머니. 구십 넘어까지 산 외할머니가 해준 이야기는 구수했고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평화로운 들판 풍경
봄빛 햇볕이 따뜻한 들길을 걷고 걸으면서 두 할머니를 떠올리고 보제나 넴초바의 할머니를 상상한다. 체코의 시골길은 정말 한적하고 평화롭고 맨 뒤에서 옆방 일행과 들었던 음악은 흥겨웠고
그야말로 즐거운 봄날의 나들이였다.

보제나 넴초바는 어떤 작가인가. 넴초바는 체코의 현대 산문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체코의 500코루나 지폐의 도안 인물이다.

1820년 그의 어머니 테레지에 노보트나가 요한 판클과 결혼하고 1821년 판클로바 가족은 라티보르지체로 이사를 간다. 1825년 그의 할머니 막달레나 노보트나가 뒤따라 이사를 온다. 할머니는 넴초바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는 성인이 된 후에 할머니를 매우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린다.

1837년 요세프 네메츠와 결혼, 요세프 네메츠는 재무 감독관으로 요즘의 세관원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민족주의적 행동이 상관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 자리를 옮겨야 했고 따라서 가족들은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다.

체코의 작가 보제나 넴초바
보제나 넴초바는 1840년 체이키 박사에게 치료를 받으며 그와 친구가 되고 박사는 넴초바에게 당대의 민족주의 작가들을 소개시켜 준다. 일 년 후 프라하로 이사하여 유명한 작가,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체코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1843년 남편과 함께 도마줄리체로 떠나고 이곳에서 실질적으로 최초의 민족 계몽가로 활동한다. 1847년 도마줄리체에서 돌아온다.

1848년 요세프 네메츠가 반역 모의 혐의를 받고 이곳저곳으로 강제 이주를 다닌다. 1850년 요세프 네메츠가 우흐리에 이송되었을 때 그녀는 네 아이와 함께 프라하로 옮겨가서 즉시 문학 활동을 하는 민족주의자들과 접촉한다.

1852년 남편을 찾아 우흐리로 가는 길에 슬로바키아를 보게 된다. 다음 해에 우흐리까지 남은 여정을 마친다. 1853년 요세프 네메츠는 일자리에서 쫓겨난다 처음에는 월급이 절반을 주어지고 나중에는 완전히 중단된다.

요세프 네메츠는 일자리를 잃어버렸고 보제나 넴초바는 프라하의 아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이 시기부터 넴초바의 편지는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 시기에 Babička (할머니)를 썼다.

체코는 일찍이 신교 운동을 시도하다가 17세기 초 가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후 체코에서는 체코판 분서갱유, 즉 체코 언어 말살 정책이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17~18세기 약 2세기 동안 기록문학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다. 대신 순수한 체코어 문학의 명맥을 이어 온 것이 수십만 개의 민요, 속담, 격언과 민담 등 구비문학이다.

체코 낭만주의자들은 체코 땅에 사는 독일 작가들의 흔적을 따라 민담을 기록하고 재창조했다. 과업을 훌륭하게 이어 후대에 체코 이야기의 원형을 전해 준 대표적인 두 작가가 에르벤과 넴초바다.

에르벤이 민속 이야기에서 유럽의 보편적 신화적인 이야기를 다룬 반면에 넴초바는 작품에서 개인적인 꿈, 사랑에 대한 욕망, 인본주의와 정의에 대한 신념을 형상화했다. 물론 두 작가는 민속 이야기를 들은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재창조해 냈다.

보편적 이야기 속 체코 전통의 색채

민담은 인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사람들의 내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민중에게 효과를 발휘한다. 구성은 이야기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고, 오랜 세월 구전으로 이어져 내려왔기에 언중의 선택으로 살아남은 말과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루어진다.

체코 민담 역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전세계적으로 익숙한 이야기의 보편성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체코 민족이 속한 슬라브 전통의 색채가 강하고 다른 유럽이나 아시아, 그리스 등의 전통과도 관련이 있다.

이야기에서는 자연을 다룬 알레고리, 종교적인 예배의식과 자연적인 신화의 흔적 등을 발견할 수 있으며, 다루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이소포스에서 유래된 동물 우화<백조 이야기>, 유머, 익살극, 종교 이야기, 마술 이야기<마법의 칼>, 반복 이야기, 로망스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변신과 모험의 모티프에서는 강한 낭만주의 경향을 볼 수 있고, 민중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다채로운 유머와 풍자, 아이러니로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무거움을 덜어낸다. (2023년 4월 11일)
500코루나 주인공인 보제나 넴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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