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상승할 때 머릿속에 가장 떠올리는 것은 뭘까? 상당수 밀가루를 떠올린다. 그만큼 밀가루는 서민 대표 식품들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료이기도 하다. 라면이나 빵, 과자 등 다양한 기호품은 물론 고추장에까지 밀가루가 들어간다. 한마디로 밀가루는 서민을 웃고 울리는 중요한 품목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에는 가뭄과 폭염, 폭설 등 이상 기상현상으로 인해 곡물 생산량이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밀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곡물이지만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국제 곡물가격이 뛰어 오르면 꼼짝없이 가격 상승을 감내해야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세계 밀생산량은 구소련 지역에서 기상 악화로 인한 작황 상태가 좋지 않아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세계 밀 생산량은 6억4493만t으로 전년보다 7.2%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08년/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기상변동은 단순히 올해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어서 앞으로도 가격이 불안은 계속될 전망이다. 시도 때도 없이 밀가루 가격 인상 전망이 나오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건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소비자로서는 대응이 쉽지 않다. 문제는 밀 가격 상승이 4~7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는 점이다. 밀 국제 시장은 선물시장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반기 밀가루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밀 가격은 지난해 3분기 가격이다. 지난 6월 갑작스런 곡물 가격 인상으로 인해 이미 일부 업체들은 밀가루 가격 인상을 결정했거나 인상을 앞두고 있다.
KREI는 지난해 3분기 밀 가격이 전년 4분기 대비 41.3% 올랐기 때문에 밀가루 가격 상승이 잠재돼 있다고 평가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만 고려할 경우 2013년 상반기 국내 밀가루 가격은 2012년 2분기보다 30.5%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미 동아원이 지난달 20일 밀가루의 출고가를 8.7% 인상했고 이어 다른 제분업체도 밀 가격 상승분을 고스란히 제품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곡물 가격 폭등은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의 공포로 이어진다. 밀은 가장 보편적인 곡류 중 하나다. 밀 가격이 상승하면 당연히 밀가루 가격이 오른다. 또 밀가루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제품들의 가격이 하나둘씩 인상되고, 이들 제품의 가격인상은 다른 품목들에도 순차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결과적으로는 전반적인 물가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제분업계에서는 밀가루 자체의 가격은 높지 않기 때문에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지난 2009년 통계청이 5년마다 진행하는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주는 품목'을 대상으로 한 가중치 조사 결과를 보면, 가중치 100을 기준으로 한 밀가루의 가격 영향도는 0.1%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 489개 품목 중 453위로 밀가루 자체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낮은 품목군에 속한다는 얘기다.
밀 가격 상승은 밀가루를 원료로 한 2차 가공식품의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공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례로 CJ제일제당, 동아원 등 제분업체들은 지난 2009년과 2010년 밀가루 값을 세 차례나 인하했다. 하지만 밀가루를 주원료로 만드는 빵, 라면, 과자 값은 그대로 유지됐다. 제과·제빵 업체들은 제조원가가 내렸지만 출고 가격은 유지하면서 가격 인상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이다.
반면 밀가루 가격이 인상되면 밀가루를 원료로 한 제품의 가격은 어김없이 오른다. 밀가루 가격 인상 소식에 국수, 부침가루, 식빵, 비스킷, 스낵과자 등 제품은 시간이 문제 일뿐 가격 인상 시기만 저울질 한다. 밀가루값이 상승할 때마다 2차 가공식품 제조업체들은 “제품 원가에서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든가 “그동안 누적된 원가 상승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항상 같은 말로 해명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데 그칠 뿐이다.
사실 업계에서는 밀가루를 '싸게 사는 요령'은 없다고 말한다. 정부의 물가규제책 덕분에 국내 밀가루 가격 자체는 그리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밀가루를 가장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업계 관계자는 뭐니 뭐니 해도 대형마트에서 밀가루를 구매하는 게 가장 저렴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형마트가 대규모 거래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게 목적이다 보니 다른 유통 채널이 대형마트를 이길 재간이 없다.
하지만 밀가루 구매에 관한 알뜰 지혜는 있다. 그건 낭비를 줄이는 일이다.
업계에서는 밀가루를 구매할 때는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게 가장 밀가루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밀가루를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은 한 번에 필요한 양에 맞춰 제품 용량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밀가루를 한꺼번에 많이 구입하면 알게 모르게 낭비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꼭 필요한 양만 구매하면 알뜰하게 밀가루를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제분업계의 조언은 1회분의 밀가루만 구입하는 게 가장 유리하다는 설명으로 모아진다. 만약 밀가루를 한 번에 사용하는 양이 소량이라면 500g 크기나 1㎏ 제품을 구매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반대로 한 번에 밀가루를 다량 사용하려면 1㎏ 제품을 3개 구입하는 것보다 3㎏ 제품 1개를 구입하는 등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저용량 제품을 여러 개 구입하기 보다는 대용량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설명이다.
요리 용도별로 밀가루를 선택하는 것도 밀가루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밀가루는 반죽의 점성과 관계있는 글루텐 강도에 따라서 3종류로 나뉜다. 시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밀가루 제품은 강력밀가루, 중력밀가루, 박력밀가루 3종이다.
글루텐의 강도는 밀가루에 들어있는 단백질 함량이 결정하는데, 강력분(强力粉)은 단백질 함량이 12~15%이어서 쫄깃쫄깃한 느낌을 준다. 빵, 소형 롤빵, 하드롤, 이스트로 발효시키는 스위트롤 등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박력분(薄力粉)은 단백질 함량이 8~12%로 바삭바삭한 조직의 제품을 만들 때 쓴다. 케이크, 쿠키(비스킷 과자), 파이 껍질, 크래커 등을 만드는 원료다. 중력밀가루는 다목적용으로 수제비, 칼국수, 부침, 만두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이외에 찰밀가루(고급밀가루), 유기농, 우리밀 등도 중력밀가루와 같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