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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일까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12.09.20 13:59 수정 2012.10.03 01:59

-루시퍼 이펙트-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군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무엇이 그런 일이 벌어지게 만들었을까. 나도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항상 착할 거라고 자신할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행동은 하고 어떤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인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천사 루시퍼처럼 유혹에 빠져서 평소에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악한 행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게 될지도 몰랐다. 정말이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악한 사람은 그 기질에 있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선과 악,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필립 짐바르도. 그는 ‘썩은 상자 제조자’에 해당되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썩은 상자’ 속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심지어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사악하게 돌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71년 8월 그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계획했다. 모의 교도소에서 동질적인 대학생들에게 무작위적으로 교도관과 수감자 역할을 배정하고 그들이 주어진 역할에 따라서 어떻게 성격 변환을 일으키는지 자세히 관찰했다. 학생들은 진짜 교도관과 수감자처럼 행동했다. 교도관 역할에 몰입한 학생들은 규칙을 어긴 수감자들에게 벌을 주고 독방에 감금하는 등 가혹한 행위를 저지르고 놀랍게도 수감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시스템에 굴복했다.
‘인간에 의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낯설지 않다.’라는,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테렌티우스의 말을 실감한 실험이었다. 어떤 인간이 저지른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절한, 아니 부적절한 상황적 조건만 형성된다면 우리들 모두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재연한 듯한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벌어진 끔찍한 포로 학대 사건. 저자는 이 사건의 가장 큰 원인도 역시 상황과 시스템에 있다고 주장했다. 선량하고 신앙심 깊은 소시민이 죄의식 없이 포로를 학대하는 잔학한 병사로 돌변하게 된 데에는 위험에 노출된 교도소 위치, 지도력 없는 상급자, 열악한 근무 환경이라는 상황과 함께 학대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속시킨 시스템이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황과 시스템의 강력한 힘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없을까. 잘못된 상황과 시스템에 대부분의 사람이 복종하고 순응할 때,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포로 학대 사진을 외부에 공개한 조 다비처럼 그에 저항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저자는 이들을 ‘평범한 영웅’이라고 칭했다. 인간 본성의 평등한 속성으로 누구에게나 그런 잠재력이 있다고도 했다. 그렇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우리 속에 존재하는 악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고 영웅적인 의지 속에 있는 더 큰 선을 추구하는 것. 내 의지와 달리 순간적으로 악의 나락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다. /김서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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