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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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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드샨도우에서 4시 48분 엘베라베 철도를 기다리면서 50분 남짓 엘베강을 따라 걷는다. 체코에 머물면서 엘베강을 걷는 것은 처음이다. 체코에 도착하고 다음 날 마이센과 어딜어딜 들려서 바드샨도우에 왔고 역내 문 닫은 카페 앞에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이기영 대표가 자판기에서 사 온 캔맥주를 마시고 일행 몇몇은 엘베강으로 간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떠오른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드레스덴이나 바드샨도우, 어딜 갈 때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엘베강, 산과 둑 사이에 고요하게 흘러가는 강물이 인상적이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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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엘베강의 물결은 고요하고 고요하다. 산과 둑 사이로 움직이는 듯 움직이지 않는 듯 잔잔하게 흘러간다. 마을을 지나가고 산을 지나가고 들판을 지나간다. 호젓하게 나 있는 자전거 길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가끔 지나가고 길 양편 푸른 풀숲에는 노란 민들레가 옹기 종지 모여 화사하게 미소를 짓는다. 봄날이다. 체코에도 드디어 봄이 온 것이다. 4월 초입, 황량하고 우울하고 음울했던 산야에 연두색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햇빛은 따사롭고 봄의 시작이다.
4월 초 헝가리 발라툰 호수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다가 우울한 심정에 사로잡힌 기억이 떠오른다. 간혹가다가 조팝나무인지 뭔지 하얀색 꽃 무리가 있고 햇빛은 쨍쨍, 투명하고 맑았는데, 왜 기분이 그렇게 우울했는지.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선글라스로 감추고는 시치미를 뗐지만.
조용하게 흘러가는 강이 바슈타이 산에서 내려다보던 강과 똑같다. 마을과 산을 휘감으면서 잔잔하게 흐르던 엘베강. 작센의 스위스라 불리우는 바슈타이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이었다. 엘베강 동쪽 강변에 위치한 산에서는 굽이굽이 흐르는 엘베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 본 강의 느낌은 여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요하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풍파를 겪은 적이 없는 태초의 그 모습이랄까.
문득 이 여행에 대해 생각한다. 일행 9명. 그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까.
한 달이 지났는데도 지금도 나는 왜 이 여행을 왔는지 내내 생각한다. 독일과 체코의 국경도시 데친역 맞은편 케이하우스 숙소에 근거지를 두고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 우연히 구매한 유레일 패스로 파리여행, 본 것도 많지만 확연히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이 여행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면 아, 하고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들이 있겠지.
하나 확실한 것은 집에 가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것, 고마운 가족들에게 잘해주고 일도 열심히 해서 돈도 벌고 아, 그리고 글도 써야겠지.
흩어지는 생각들을 엘베강으로 모은다. 이기영 대표가 강조했던 엘베강,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지대에 있는 스테티 산지를 수원으로 하여 체코 북부, 독일 동부를 흘러 하류에서 함부르크를 지나 북해로 흘러들어가는 엘베강. 독일은 엘베, 체코는 라베, 폴란드 와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엘베강. 긴긴 세월 그 많은 일을 가슴에 갈무리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하게 흘러가는 엘베강. 그 마음처럼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많은 일을 깊게 깊게 가라앉히고 차분하고 잔잔한 마음으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종일 걸어도 기분이 좋은 엘베강. 돌아다니느라 엘베강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엘베강이 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이고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엘베강을 로마 제국의 동쪽 국경으로 삼으려고 시도한다. 20년에 걸친 정복 사업 끝에 성공하는 듯이 보였던 엘베강 이서지역 제패는 서기 9년 아르미니우스에 의하여 로마군이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물거품이 된다. 이후 해운 무역이 중심이 된 중세 시기, 엘베강은 중요한 무역 루트 중 하나였고 엘베강을 따라 자리잡은 한자동맹 소속의 도시들이 번영을 누린다. 중세를 지나 근대에 들어서도 엘베강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았고 1842년에는 서쪽의 베저강과 북쪽의 발트해를 이어주는 상업용 운하가 개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