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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기고] 원효성사(元曉聖師) 헌다례 행사를 주관하며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4.04.03 06:34 수정 2024.04.03 06:34

박인주 양산문화원장

‘원효와 양산문화의 전망’ 천성문화 조명
4월 30일, 천성산 원효암에서
제1회 천성문화,원효성사 헌다례행사

↑↑ 박인주 양산문화원장

양산문화원에서는 지난해 시범행사에 이어 4월 30일 오전 10시부터 원효암에서 엄숙하게 원효성사 헌다례 행사를 주관하기로 하였다. 원효가 생전 실천한 무애차(無㝵茶), 무애악, 무애춤으로시작하여 원효암 주지(지범) 스님의<해동원효 구중척판>별 퍼프먼스와 내외귀빈과 참여 시민의 헌다의례로 진행한다.

원효성사 헌다례는 천성산의 찬란했던 천성문화를 조명하고 양산시의 무궁한 발전과 시민들의 건강,행복,안녕을기원하는 기원제이다.

일찍이 원효는 인류 문화에 새벽을 열었던 민족의 위인 중 한사람이다. 출가하면서 신통함으로 30대에 화엄경을 통달하고,무애(無㝵)행으로 민중속으로 들어가 정토신앙을 심었고 40세에 요석공주와 인연으로 설총을 낳고 파계승으로 환속하여 소성거사(일명 복성거사)로 신라의 문화속에 살다간 대성자였다.

신라부흥기, 원효나이 45세에 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삼량주 원적산(지금의 천성산)으로 입산하면서<해동원효 구중> 척판이적으로 중국에서 건너온 일천수행자를 화엄벌에서 성불 했다는 유래에서 원효의 20여년간 천성산(千聖山) 대둔사에 거처를 두고 전국 수행의 길을 다녔던 것이 곳곳에 원효 창건의 사찰로 전해오고 있으며 천성산 대둔사를 중심으러 성불을 향한 집념과 회향 하기까지 원효의천성산 체류 20여년을 추론(설화) 하여 본다.

원효는 65세경에 경주 고선사(지금의 경주덕동호)로 하산하여 강론과 저술 활동에 전념하던중 69세에 혈사(穴寺)로 옮겨 정양하다가 70세에 입적하였다. 양산의 옛지명 삽량주시대에 원효는 천성산에세 신라불교의 정신문화를열었던 사상가요,철학자요,저술가로서 활동했던 위대한 성인(聖人)이었다.

이렇듯 원효의 천성산에서 20여년간 행적조사를 위한 양산학 차원의 ‘원효와 양산문화의 전망’이란 1차 학술대회(2023. 11. 11)자 2차 학술대회(2024년 하반기)로 천성문화를 조명하고자 한다. 천성산에서 찬란했던 천성문화가 양산의 아름다운 문화로 발전되기를 바라면서 제1회 천성문화,원효성사 헌다례행사를 시민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시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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