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상재건중학교 건물을 건립하고 1969년경 웅상재건중학교란 학교 명칭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일체의 수업료를 받지 않았으며 당시 무임금으로 봉사하신 선생님들은 교장 전종태 교사 주남출신 이태걸, 소남출신 성영수, 소남출신 김시경, 용당출신 이승갑, 주남출신 안신우, 소남출신 윤종진, 소남출신 김창국(출생지는 양산면), 서창출신 김말선, 명동출신 박영배 이분들이 헌신적으로 강의를 해주셨다. 숭고한 인간애를 발휘하신 분들이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웅상의 자랑거리 중 으뜸 자랑거리는 웅상에서는 최초로 초중등교육기관인 백동정사를 사재로 건립하고 훈장선생님들이 무임금으로 훈도하시며 학생 부모님들의 신분의 귀천의 분별 없이 노비의 자녀도 차별없이 수업에 임하도록 하였고 백동 인근에 와 글자랑 하지 말라는 고유언어를 만들어 내었다. 인근마을에 (외홈) 걸인들이 큰 마을을 이루어 살면서 지역의 모든 주민들이 끼니때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여 먹을거리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선비다운 지역인심을 길러낸 원천은 백동정사의 교육정신이었다. 마을마다 서당이 건립되게 된 것도 백동정사에서 수업받은 제자들이 스승의 교육철할 때문이었다.
이 정신이 이어저 웅상초등학교, 덕계초등학교, 서창초등학교, 개운중학교, 웅상재건중학교 설립시 대다수 부지를 주민들이 기증하였으며, 부지 정지작업과 건물 건립시 주민들의 노동 협찬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개운중학교 초창기 수업은 웅상초등학교 교실을 빌리고 교사들은 무임금으로 봉사하였다. 웅상재건중학교 역시 소남마을 회관을 빌리고 교사들은 무임금으로 개교때부터 폐교시까지 봉사했다. 전국 어느지역에도 보기 드문 일이다.
웅상재건중학교는 교사들 인건비 지출은 하지 않았지만 이외 학교운영비는 일반학교와 같이 소요되었다. 만만찮은 학교운영비 대다수를 전종태 선생이 부담하고 주민들의 협찬에 의하여 운영되었다.
웅상재건중하교 수업을 십년넘게 하다 주민들의 소득도 늘어나고 대다수 학생들이 개운중학교로 진학할 사정이 되고 정부의 중학교 의무교육 시행으로 재건중학교에 수업받을 학생이 없어 웅상재건중학교는 폐교를 했다.
전종태 선생은 웅상초등학교 동창회장, 개운중학교 동창회장, 전국해군전우회 회장, 신상우국회의원 비서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웅상행정구역 개편 공동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하시며 평생 정치성향은 김대중 대통령을 신봉하시는 의식을 가지고 실천하여 많은 억압과 탄압을 받는 생활을 했다. 지역현안이 발생하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역현안을 최우선시하여 몰입하신 본받을 만한 애향시민의 길을 걸어며 일생을 사셨다.
말로에 수녀이신 따님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자가 되어 모든 일 초월하는 건실한 믿음 생활을 하시다 하늘나라로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