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영일만에서 일본 이즈모까지, 신화 속에 남은 교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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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비고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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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영일만은 단순한 설화의 무대가 아니라 신라와 일본을 잇는 해양 문화 교류의 현장이었다.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는 해와 달의 빛을 잃은 신라가 다시 빛을 되찾는 신화로 알려져 있지만 그 배경에는 신라의 직조와 철기, 농경 문화가 일본으로 전해진 역사적 맥락이 담겨 있다.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귀비고(貴妃庫) 전시관이다. 귀비고는 세오녀가 짠 비단을 보관하던 창고로 전해지며, 오늘날에는 신라와 일본을 연결하는 문화사의 상징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신라는 직조 기술이 발달해 유리왕 시대에는 ‘가배(嘉俳)’라는 국가적 직조 경연을 열었다. 이는 국가 위신을 드높이는 의례였으며 직조는 곧 권력과 문화를 상징했다. 이 직조 기술은 일본으로도 전해졌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왕자 아메노히보코가 일본으로 건너가 직조법을 전했다고 하며, 일본 오사카 지역 하타(秦)씨 집단의 뿌리와 연결된다. 일본의 ‘니시오리(織部)’라는 성씨 역시 ‘베 짜는 사람’을 뜻하는데 이는 신라의 직조 문화가 일본인의 정체성과 직결될 만큼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영일만과 형산강 유역은 철기문화의 중심지였다. 초기 철기시대 무덤과 고분에서 철제 무기와 농기구가 다수 출토되었으며 삼국시대에 이르면 신라는 고도의 제철 기술을 보유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기술이 ‘가라사비(韓鋤, 한국식 쟁기)’ 전승으로 남아 있다.
신라의 철제 농기구와 무기 제작 기술이 일본 야요이 시대에 전파되며 일본 농업혁신과 군사력 강화에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태양은 곡식 재배와 직결된 존재로 농경 사회에서 곧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영일 지역의 제의는 태양숭배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이는 연오랑세오녀 설화 속 ‘해와 달’ 모티프와도 맞닿아 있다.
한반도의 선진 벼농사 기술은 일본에 전해져 야요이 시대 농업혁신의 토대가 되었다. 실제로 일본에서 발견된 탄화미와 토기, 논 유적은 한반도 남부의 벼농사 기술과 직접 연결되는 증거로 평가된다.
포항·영일 일대 옛 소국 근기국(斤奇國) 주민들은 태양에 제사를 올렸으며 신라는 이를 국가 제사 체계로 흡수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사방의 제단에서 천제를 지냈는데, 이 과정에서 해와 달을 기리는 ‘일월제(日月祭)’가 국가적 의례로 정착했다.
이는 연오랑세오녀 설화의 신화적 배경이자 태양·달 숭배 전통이 제도화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 고대 문헌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신라와 관련된 인물과 사건이 다수 등장한다. 아메노히보코를 비롯해 스사노오 신앙과 연결된 전승은 신라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문화 요소를 반영한다. 이는 단순히 신화 속 이야기라기보다 신라와 일본 사이의 실질적 교류와 기술 전파가 기록된 역사적 단서라 할 수 있다.
일본 이즈모 지방은 신라와의 문화 교류 흔적이 두드러진 지역이다. 스사노오 신앙을 중심으로 한 신사와 지명, 그리고 ‘히노미사키(日御崎, 해가 깃드는 곳)’ 같은 지명은 태양 숭배와 한반도 전승의 흔적을 보여준다.
연오랑세오녀 설화 역시 이러한 해양 교류의 기억을 담은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영일만을 출발점으로 한 신라의 문화는 일본 이즈모·교토 일대에 깊은 흔적을 남겼으며 이는 오늘날 신화와 유적 속에서도 확인된다.
귀비고 전시는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단순한 전래담이 아니라 신라와 일본을 잇는 해양 네트워크의 역사로 확장해 보여준다. 비단과 철, 벼농사와 제천의례는 신라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어 동아시아 고대사의 흐름을 형성했다. 포항의 설화는 곧 동아시아 문화사의 일부였으며 오늘날 귀비고는 그 기억을 되살리는 역사·문화의 아카이브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