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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개관하는 양산 문화예술인 공동창작소 전경(양산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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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자치] 양산문화재단이 오는 7월 공식 출범한다. 양산시는 총 35억 원 규모의 출연금을 투입해 문화예술정책을 전담할 기관을 설립하고, 생활문화 확산과 지역 고유 콘텐츠 발굴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본부는 옛 어곡초 자리에 조성된 문화예술인 공동창작소로, 2국 3팀 27명 체제로 출발한다. 지난 3월 창립총회를 마쳤고, 대표이사에는 손영옥 전 한국서예단체총연합회 경남지회장이 선임됐다. 오는 6월까지 직원 채용과 조직 구성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까지 양산시는 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공연 위주의 사업을 펼쳐 왔다. 그러나 생활문화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시민들의 일상 속 문화 향유 기회가 부족하고, 지역 예술인들은 창작 공간과 지원 시스템의 부족을 꾸준히 호소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재단 출범은 단순한 조직 하나의 탄생이 아니라, ‘하드웨어 중심 문화행정’에서 ‘콘텐츠 중심 문화정책’으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번 재단 설립이 단순한 조직 확대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의 삶 가까이 문화가 들어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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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지자체는 문화재단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문화의 실험을 펼쳐왔다. 서울 성북문화재단은 지역문화재단이 단순히 공연이나 전시를 기획하는 기관을 넘어, 주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재단은 청소년과 주민, 예술인이 직접 도서관의 운영에 참여하거나 마을 축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주민이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기획자’로서 자신의 삶과 공간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주체로 나서는 것이다.
대표 사업인 ‘우리동네 이야기 프로젝트’는 마을마다 숨어 있는 일상적 경험과 기억을 주민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그것을 전시나 공연, 출판 등의 문화 콘텐츠로 확장해왔다. 주민 인터뷰, 사진, 글쓰기, 구술 채록 등을 통해 축적된 아카이빙 결과물은 단순한 자료가 아니라 지역 정체성을 구성하는 생생한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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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우리동네 이야기 프로젝트 사진- 건강한 여유와 일상을 위한 파트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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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운영 방식은 “문화는 소비가 아니라 관계”라는 성북문화재단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문화가 특정 전문가나 공공기관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나누어지는 것임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양산문화재단이 참고할 수 있는 점은 분명하다. 지역민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문화로 표현해볼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권 안에서 벌어지는 작고 지속적인 실천들이 쌓여야 비로소 지역의 문화자산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지원하고 연결해주는 것이 문화재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임을 성북은 잘 보여주고 있다.
김해문화재단은 지역문화재단이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대표적인 예술인지원사업 ‘불가사리’는 지역 예술인들이 공모에만 의존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은 단순한 창작비 지원을 넘어서, 예술인과 행정,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기획 프로젝트, 워크숍, 네트워킹 등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어, 지역예술계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
또한 ‘말모이 프로젝트’는 김해 시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특히 세대와 계층, 지역별로 서로 다른 표현과 어휘를 모아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화다양성 확산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의 말과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보존하려는 시도이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화적 장치로 작동했다.
이처럼 김해는 도시브랜드나 대형 축제 중심이 아닌, 지역의 일상 속 문화와 언어를 자산으로 삼는 전략을 취해왔다. 양산문화재단이 예술인 창작지원과 문화다양성 정책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김해처럼 ‘작지만 연결된 실천’을 정책화할 수 있는 역량이 재단 운영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울산문화재단은 산업도시의 이미지를 넘어서 문화도시로 전환하기 위한 실험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쳐온 광역재단 중 하나다. ‘예비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울산시는 문화전환 PD, 시민추진단, 생활문화 기획단 등을 조직하고, 지역 주민이 직접 문화정책 기획에 참여하도록 제도화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프로그램 운영 방식이다. '구석구석 문화배달', '문화마당 장날', '별빛문화기행' 등은 울산의 5개 구·군 전역에서 동시에 혹은 교차적으로 이뤄지는 생활권 기반 분산형 프로그램이다. 이는 대형 공연장이나 시청 앞 광장에만 문화 행사를 집중시키는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주민이 사는 공간 가까이 문화가 도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문화예술이 지역 균형발전과도 맞닿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양산 역시 동부권(웅상 지역)과 중심권의 문화 격차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울산처럼 읍면동 단위 문화기획과 생활문화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문화는 시설에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도시의 품격을 만든다는 점에서 울산의 실험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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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젊음의 거리 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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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술인 김 모 씨는 “창작 활동을 단발성 공모로만 이어가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지역에 오래 머무르며 이웃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예술가의 삶 자체를 고려한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 박 모 씨 역시 “축제는 구경하는 느낌이 강하고, 일상에서는 문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며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갈 수 있는 소규모 문화공간이 동네 곳곳에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러한 목소리는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문화재단이 시민과 예술인 모두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정책의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부터 이들이 단순한 대상이 아닌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처럼 공청회, 시민 위원회, 기획 공동체 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예술인 지원도 공모 중심이 아닌 생활 밀착형, 지속 가능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양산이 가진 고유의 역사와 자연, 마을공동체의 문화도 장기적 안목에서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단발성 행사를 넘어, 지역 자산을 깊이 있게 다듬고 발굴하는 문화정책이 필요하다.
양산문화재단은 이미 제도적 기반과 조직 인프라는 갖춘 상태다. 하지만 문화는 예산과 조직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문화정책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문화는 행정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예술인과 시민, 그리고 행정이 함께 숨 쉬며 문화를 설계하고 실행해 나갈 때, 비로소 ‘문화도시’라 불릴 수 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양산문화재단이 그런 도시를 함께 만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 양산문화재단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그것이다.